8월 마지막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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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마지막 날에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3.08.31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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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년 열두 달을 사계절 순서대로 3달씩 나누면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2월)이 된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일생이 일년 달력 속에 순서대로 다 들어있는 것 같다.
봄은 유아ㆍ소년기, 여름은 청ㆍ장년기, 가을은 노년기,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다. 4계절의 처음은 봄인데 그런 봄이 1년 중 3월이 되어서야 늑장 시작되는 것이 어중간하고, 겨울은 한해의 제일 마지막 계절임에도 이듬해 2월까지 게기면서 물러가지 않는 것이 못마땅하다. 순서대로 시작과 끝이 딱 부러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양다리 걸치고 얼렁뚱땅 “그리여” 하고 얼버무리는 식이다. 역시 한해의 중심에서 확실히 자리 잡고 있는 계절은 여름과 가을뿐이다.
오늘은 8월의 마지막 날, 어언 한해의 2/3를 보내는 날이다. 이제 남은 계절은 가을과 겨울뿐이다. 내일이 그 시작이고 또 인생으로 치면 황혼기다. 흔히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이고 인생으로 치면 마지막 결실을 맺는 계절이라고 한다.
내 인생도 과연 그럴까? 나는 그동안 무엇을 하고 살았기에 수확할 결실도 없단 말인가? 인생무대에 등장은 화려했으나 퇴장을 앞둔 내 손은 빈손일 뿐이다. 그러나 사람의 삶도 먹고 살자고 하는 일, 그동안 잘 먹고 살지 않았냐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는 몰라도, 허허, 내가 지금까지 단순히 먹고 살기만을 위해 논개구리나 산속 고라니처럼 살아왔단 말인가?
이런 와중에 불과 몇 주 전에는 아주 가까운 친지의 타계소식을 접했다. 급히 아내와 같이 상경하여 만3일을 빈소를 오가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켰었다. 친지라고 해도 그동안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두 번 만났을 뿐 개인적으로는 연락도 만난 적도 별로 없었다. 살기에 바빠서 그런지는 몰라도 생시에는 연락이 없다가 타계 소식만은 재빨리 전해온다. 결국 고인이 되고난 후 입관할 때 면도와 화장품으로 깨끗하게 꾸며진 시신의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다. 말 한마디 나누지를 못하고 내가 그곳에 간 것을 그가 알리도 없었다. 고인은 수의를 입힌채로 오랏줄에 묶인 죄인신세가 되어 꽃들이 무수히 꽂혀있는 관의 속으로 들어가고 관뚜껑을 덮는 순간 그의 인생무대는 거기까지였다. 화장장으로 가기 전에 빈소 방을 빼야 했고 빈소에 복작거리던 문상객은 이미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그 빈소는 곧 다른 영령이 차지했다. 입구에 늘어선 수많은 조화들도 모두 퇴장했다. 고인은 생전에는 타보지도 못한 길고 화려한 리무진에 실려 뒤따르는 유족뻐스를 거느리고 화장장으로 떠나기 전, 병원 장의담당 직원들이 모두 나와서 일렬로 선채 영구차를 향해 90도로 몸을 굽혔다. 추모공원(화장장)에 이르니 화장 순서를 기다리는 유족들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니 식사부터 먼저 하란다. 그곳 식당에서는 4가지 단일메뉴 중 각자가 하나를 말하면 기계적으로 타닥딱 음식이 나왔다. 슬퍼하는 상주 하나 없고 모든 것이 기계적이었다. 시신들을 화덕으로 보내는 유족들, 화장이 완료되어 회수된 유골 뒤를 따르는 유족들로 분주했다. 소각이 시작되자 목관은 아까 담겨있던 꽃들과 함께 순식간에 화염에 쌓인다. 1시간 20분이 지난 후 말없이 유골이 나오면 유족들은 그것을 소중히 안고 같은 차로 돌아간다. 모니터 영상에는 화장중인 고인들의 이름과 얼굴사진이 줄을 이어 등장한다. 아, 저 사람은 저런 이름을 가지고 저런 모습으로 세상을 살다가 갔구나! 화장 완료된 고인의 영상은 퇴장(삭제)되고 그 자리는 줄줄이 대기하고 있던 다른 고인이 대신 등장했다.
인생의 마지막 등장과 퇴장이 줄을 이어가는 모습이었다. 이제 내일이면 9월이다. 인생의 가을이다. 모두들 거짓말 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상투(감투)싸움 하지 말고 선업을 쌓으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은 세상이 될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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