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금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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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지금 잘 살고 있어
  • 오계자(보은예총 지부장)
  • 승인 2023.05.2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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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변함없이 동살은 창을 집적거리며 축복의 새날을 전한다. 그래 오늘도 보람되게 엮어보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다가 문득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엮어야 보람되는가?” 어떻게 엮어야 잘 사는 것일까. 내 몫으로 주어진 복을 키워서 누리는 사람도 있고, 내 몫의 복이 불만으로 인해 고뇌가 되는 사람도 있다. 잘 살고 못사는 건 각자의 몫이라는 이치를 누가 모를까만. 잘 닦아놓은 길에서 운전하는 수월한 숙제가 아니라서 난감한 것이다. 
언젠가 친구가 편하게 살라는 권유를 한 적이 있다. “이 나이에 무슨 문학이니, 나는 편지 한번 쓰려면 ‘잘 있느냐 나도 잘 있다’ 이거 쓰는 것도 골머리를 짠다. 이제 편하게 살어.” 또다른 친구는 옆에서 한 수 더 뜬다. “너 있잖아 맨날 그렇게 글 쓴다고 머리 쥐어짜면 빨리 늙는다.” 친구들 말이 다 일리가 있고 나를 위한 말임을 안다. 그들의 현실적 시선으로 보면 내가 허황된 별을 쫓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노트북을 외면할 수가 없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첫발을 내딛을 때의 욕망은 이미 내려놓았다. 그러면서도 노트북을 놓지 못 하는 고집은 습관일까 취미일까.
살면서 내가 참 헛삶이 질을 했구나 싶었던 시간들도 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들도 소중한 내 나이테를 형성하고 있다. 내가 무얼 하든,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면 내 나이테가 부끄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 하고 싶은 일에 과한 욕망이 첨가된다면 오히려 헛되게 흘린 시간 즉 크로노스(chronos)가 될 수 있다. 허나 대단치 못하더라도 깨어있고 현재에 충실하다면 카이로스(kairos)가 되리라.
내가 욕망을 내려놓은 것은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는 욕심이기 때문이었다. 좋아서 하고 싶어서, 선택한 길은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조차 나를 살게 하는 이유가 된다. 허나 욕망이 스며들면 번뇌가 따른다. 
에스프레소 잔을 손안에 보듬고 그 친구에게 말했다. “남들이 너무 쓰다는 이 소량의 커피를, 나는 쌉쌀한 맛의 뒤에 숨은 묘한 매력에 빠져서 이것만 찾는 것처럼 문학의 매력에 빠져서 놓을 수가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이니 참 단순하지.” 라고 답을 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일까? 그 친구의 혼잣말에 내가 끼어들었다. 
“이것이 잘사는 길이며 저것은 잘못 사는 길이라는 정답은 없어, 지금 친구는 나를 안타깝게 보지만 나 자신은 글 쓰는 것이 행복이잖아, 자신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사는 것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 더 늙어 기운 잃기 전에 즐기며 살자는 친구 생각도 잘 사는 삶이고. 경자처럼 친구도 좋고 놀러 다니는 것도 좋지만, 내 남편 내 자식들 위해 바쳐온 인생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삶도 잘 사는 거잖아. 끼니때면 꼬박꼬박 남편 밥 챙기러 간다고 자유 없는 삶처럼 안쓰러워 하지만, 본인이 좋아서 선택한 길이고 본인이 행복하다면 잘 사는 거야.” 바로 그때 친구의 속 뜰에서 나오는 한마디가 나를 놀라게 했다. 
“나 여고시절 문예반에서 시를 쓰는 소녀였어.” “지금은 쓰고 싶지 않아?”
“당연히 쓰고 싶지, 하지만 용기가 없어, 그래서 더 여행에 빠지는 것 같아.” 
“너야말로 잘못 살고 있구나, 하고 싶은 일을 멀리 두고 그리워하는 삶이구나, 그건 불행이야, 내 행복 내가 엮는 거야, 누가 대신 엮어 주겠니. 시작해.” 
몇 달 후, 그 친구가 찾아와서 하는 말 “있잖아 이제 여행을 해도 느끼는 감성이 달라, 전에는 즐긴다는 것, 무엇을 즐기는지 알맹이가 없었는데, 이젠 아니야, 단순히 웃고 수다스런 농담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알게 되었어. 삶의 질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겠어. 고마워 오선생 덕분이야. 이젠 일상이 시로 다듬어지고 있어.”  
나는 박수를 쳤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웃고 즐기던 생활이 잘못 산 것은 아니다. 쏘다니며 보고 듣고 즐기던 시간들이 당신의 나이테 속에서 아름다운 추억으로 살아남아 시 창작으로 등장 할 거니까. 우리의 생활이 잘 사는 건지 잘못 사는 건지 정답을 찾으려 말자. 후회하는 지난 시간도 현재의 밑거름으로 활용하고 현재의 아픔은 미래의 밑거름으로 활용한다면 우리는 잘살고, 못 산다는 이론 보다, 모두 다 잘 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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