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터전, 대청호에 잠긴 수몰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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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대청호에 잠긴 수몰의 현장”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2.11.17 07: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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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명소길(62)- 금강의 발원을 따라 대청호로 가는 길

모든 길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길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역사의 중요한 이야기도 남긴다. 보은의 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연고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전설이나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길, 그냥 편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길, 자연과 함께 걷고 싶은 숲길, 그 모든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거신교에서 바라본 대청호.
거신교에서 바라본 대청호.

 

보은군 회인면 회인천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회남면 금곡리는 뒷산에 위치해 있는 국사봉에서 파낸 쇠를 이곳 마을에서 구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쇠실이락 불린다. 금곡리에는 정자가 하나 있었는데 ‘송석정’ 이라 전해지고 있다. 
이 송석정은 금화 양주승이 세워 훈육하던 곳으로 학우들을 데리고 시를 읊으며 피서하며 보내던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금곡리 입구에 세워진 추양정사에 모셔진 어당 이상수 선생의 제자중 한분이다. 
금곡리를 지난 한참을 걷다보면 거신교가 나온다. 이 거신교는 조곡리에서 사당마루를 연결하는 1980년에 건설된 다리로 이 다리를 건너면 회남면의 중심소재지인 거교리가 나온다. 거교리를 뒤로 하고 좌측 도로로 향하면 조곡리가 나온다. 조곡리는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에 위치해 있어 새실 또는 조곡이라 불린다. 1980년 대청댐 담수로 일부지역이 수몰되고 현재는 조곡 1.2구로 나뉘어져 있다. 조곡리 입구 거신교를 건너기전 좌측에는 ‘새청산’ 이라 불린다. 
이 새청산은 옛날부터 관청의 새청사가 들어설 것이라 하여 새청이라 불렸다고 하나 지금은 대청댐 담수로 회남면 관공서가 이전할 때 초등학교와 면사무소, 농협, 우체국 등을 다리건너 거교리에 세워졌고 이곳에는 지서만 세워졌다고 한다. 지금도 회남면 파출소가 자리하고 있다.
조곡리에는 예부터 ‘마전사’ 라고 불리는 절터가 남아있다. 조곡2구에 위치한 마전사 절터는 창건 연대는 알수 없으나 지금은 경작지로 변한 절터자리에는 기와조각이 많았고 절터 바로 아래 600년이 넘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위치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조선 세조임금이 속리산에 왔다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며칠동안 계셨다고 하고 사슴사냥을 하다가 비를 피한 곳이 이 절이었고 젖은 베옷을 말렸다고 해서 ‘마전사’(麻田寺)라고 불리고 혹 마록사(麻鹿寺) 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마전사 앞 뜰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나라의 국난이 생길징조가 있으며 “중중” 하면서 울어 나라의 길흉화복을 예견한 나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옛날에 “마전사” 이 절에는 암, 수의 두 은행나무가 있었다. 암나무는 절경내에 있었고 또 한그루(수컷)는 동구밖에 있었다고 한다. 이 두 나무는 서로 바라보며 때가되면 열매를 많이 맺어 큰 소득이 되었으나 가을에 낙엽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침 저녁으로 청소를 하는데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어느 해인가 주지승은 절 경내에 서 있는 한 그루를 베어 버리면 청소하기에 용이하다고 생각하고 베도록 하였으나 행자승들이 일제히 반대를 하고 협조하지 아니하므로 손수 큰 톱을 갖다 대고 베기 시작했다. 
행자승들이 반대를 한 것은 비록 낙엽질 무렵에는 온 사찰 경내가 지저분하지만 경내에 은행나무가 있어야지 경관에 어울린다고 베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주지승이 나무를 베기 시작한지 사흘만에 나무가 쓰러졌는데 그와 동시에 은행나무에서는 우유빛 백색물이 솟아나왔고 나무를 벤 주지승은 톱을 쥔 채로 현장에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와 같은 변고가 생기고부터 절은 퇴락하게 되었고 이곳에 마을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동구밖에 서 있던 은행나무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울기 시작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날 때도 한달 전부터 울었고 6.25사변때는 약 1주일을 두고 마을이 울리도록 깊은 밤중에 울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 나무는 나라에 변고를 미리 예고해 주는 신기한 나무로 여기고 있으며 보은군 나무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예전 국사봉에서 산제를 지내고 이 은행나무에 제사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마전사 절터는 700여평의 규모에 2단으로 조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전사가 위치한 바로 아래에는 1974년부터 무연탄을 채굴하던 제일광산이 위치해 있었으며 지금은 폐광이 되어 광산의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최근에는 이 폐광에서 발생된 산성수가 대청호로 유입되거나 인근 마을 주민들이 이 폐광에서 나오는 물을 급수로 사용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고 한다.

조곡리 마을 전경.
조곡리 마을 전경.
마전사앞 제일광산의 흔적.
마전사앞 제일광산의 흔적.
마전사앞 제일광산의 흔적.
마전사앞 제일광산의 흔적.
조곡리와 거교리로 갈라지는 새청산 모습.
조곡리와 거교리로 갈라지는 새청산 모습.
새청산에 위치한 회남파출소.
새청산에 위치한 회남파출소.
조곡1리 우물.
조곡1리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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