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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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이야기
  • 양승윤 (회남면 산수리)
  • 승인 2022.11.17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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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스물하나에 열일곱 처자와 혼인하셔서 아홉 남매를 낳으셨다. 첫 딸을 낳은 후 바로 아들이 있었는데 일찍 잃으셨다. 홍역이었다고 들었다. 그래서 팔 남매가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혼인 후 몇 년 동안 태기가 없으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가까이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신혼 첫날밤에 신방에 두 분이 어색하게 마주 앉으셨을 때 방안을 설설 기어 다니는 벌레가 불쑥 나타났다. 흔한 바퀴벌레나 돈벌레쯤 되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흠칫 놀라 몸을 움츠리는 사이에 어머니는 재빨리 엄지손가락으로 꾹 눌러서 해결하셨다. 개미 한 마리 죽이지 못하시던 아버지로서는 가히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어머니에 대한 정나미가 제자리를 찾아오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어머니는 용띠생이셨고, 아버지는 쥐띠생이셨다. 농촌에서만 자란 어머니에게 동경 유학생 신랑은 하늘 같았다. 어머니가 쥐구멍에 먹을 것을 갖다 놓더라 하는 누군가의 우스갯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어머니에게 쥐는 남편의 분신 같은 존재였다. 꽃다운 스물다섯 나이에 비쩍 마르고 못생긴 서른세 살 노총각한테 시집온 아내는 유독 쥐를 싫어하다 못해 무서워한다. 귀향해서 고사리 캔다며 산에 오르면서도 등산용 스틱 하나 쥐고 나선다. 뱀 쫓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해선데, 큰 뱀을 봐도 도통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쥐 얘기만 나와도 몸서리를 친다. 아내의 가난한 신접살림이 시작된 전철역 인근의 허름한 집에는 쥐가 많았다. 어느 날 큰 간장독에 쥐가 빠져 죽었다. 어머니는 쥐를 건져 내시고는 장독대 관리를 잘못했다며 아내를 크게 혼내셨다. 나는 딱한 아내를 위한답시고 앞뒤를 재보지 않고 간장을 쏟아 버렸다. 그 일로 아내는 두고두고 오랫동안 어머니에게 야단을 맞았다. 
   나의 작은 며느리는 인도네시아 출신이다. 우리 말도 잘하고 우리 전통과 예의범절에도 꽤 익숙하다. 제사 때마다 전을 잘 부치고 손이 많이 가는 밤도 잘 깐다. 손끝이 야물어서 그렇다는 게 아내의 말이다. 살림을 따로 내보내기 전에 우리 가족은 두 아들 두 며느리를 데리고 세 가구가 일 년 넘게 한집에 살았다. 어느 날 작은 며느리는 쌀독에서 쌀을 퍼내다가 소스라쳐 놀랐다. 꼼지락거리는 애벌레를 처음 본 것이다. 인도네시아는 쌀의 고장답게 100일에 한 번꼴로 2년에 7기작이 가능한 발리(Bali) 같은 지역도 있다. 그런데도 식량이 부족하여 베트남과 태국에서 많이 수입해 온다. 투명한 플라스틱 팩에 담아 파는데, 도시 수퍼에는 5킬로짜리가 많고 시골로 가면 1킬로짜리나 2킬로짜리가 잘 팔린다고 한다. 쌀벌레가 낄 틈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5년씩 묵은쌀도 농협창고에 쌓여있다.
   쌀벌레를 무서워하는 작은 며느리는 쥐는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쥐가 많은 인도네시아에서 시집와서가 분명하다. 큰 쥐는 정말 엄청나게 크고 고양이도 겁내지 않는다. 고양이가 쥐를 뒤쫓기는 한다. 큰 쥐가 쫓기다가 멈춰서면 고양이도 멈칫하고 따라서 선다. 동남아에는 아예 쥐 고기 식용문화가 있는 나라도 있다. 식용 쥐는 벼 이삭을 갉아 먹고 나락을 까먹고 논에 사는 논 쥐다. 대개는 덩치도 크고 꼬리 끝이 하얘서 집쥐와 구별된다. 캄보디아에서는 추수가 끝난 논둑에서 쥐를 잡아 기름에 튀긴 다음 베트남으로 많이 수출한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북쪽 끝 마나도(Manado)의 재래시장에 가면 불에 그슬려 놓은 여러 종류의 식용 쥐를 볼 수 있다. 박쥐가 제일 비싸다. 맛을 물으면 엄지손가락을 척 올려서 손을 한 번 떨어 보인다. 
   논 쥐의 천적은 인근 습지에 서식하는 왕구렁이다. 어른 팔뚝처럼 굵고 길이가 5-6 미터 나가는 놈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녀석들은 워낙 순해서 동네 꼬마들이 주무르거나 목에 걸고 논다. 한때 국내에서 웅담 성분이 많이 함유되었다는 간장약이 인기를 끌었다. 웅담 공급에 차질이 생겼는지, 이번에는 사담(蛇膽)이 웅담을 대체할 수 있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졌다. 왕구렁이와 놀던 꼬마들이 긴 실에 줄줄이 달아 햇볕에 말린 사담을 두 손으로 들어 올리고는 한국 관광객들을 향해서 “싸담, 싸담”하고 외쳐댔다. 왕구렁이가 줄어들자 논 쥐가 활개를 쳤다. 농민들의 항의가 잇따르자 이 나라 관계기관에서 우리 공관에 항의성 자제를 당부했다. 벌써 오래된 얘기다. 같이 사는 사람 세상에도 알고 보면 서로 확연하게 다른 여러 가지 단면이 있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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