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아침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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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아침밥상
  • 김옥란
  • 승인 2021.09.16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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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사연이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토방 마루에서 두 아들과 놀고 있는 애들 엄마에게 어른들끼리 아래채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나 하자고 했다. 녹음 우거진 8월 어느 한 날이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 따라 이곳에 종종 왔었는데, 제가 이곳을 다시 찾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어느 추석 전날이었어요. 제가 어른이 되어서 결혼을 하고 두 아들을 낳아 기르던 중, 성격 차이로 이혼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친정 부모님께 얹혀서 살게 되었는데 추석이 다가오는 거예요. 명절에는 친척들이 친정집으로 다 모이거든요. 이혼한 저를 걱정한다며 한마디씩 할 텐데, 그 상황을 견딜 자신이 없더군요. 고민하다가 추석 전날 두 아들을 데리고 여기로 왔어요.
 추석날 아침, 주눅 들어 밖에도 못 나가고 숨죽이고 있는데 할머니가 부르시더군요.
   “애기엄마, 일어났어요? 아침식사해야지요? 문 좀 열어봐요.”
방문을 열고 얼마나 놀랐던지요. 할머니가 밥상을 가져오신 것이었습니다. 그토록 정성스럽고 성대한 추석아침밥상을 받다니요. 
 ‘아, 추석차례 지내시기도 전에 저희 먼저 챙겨주시다니……  잔치상을 차려주시다니……’
할머니는 웃으며 말씀해주셨어요.
  “많이들 드세요.”
할머니의 밥상을 받는 순간 우리는 명절에 남의 집에 와 있다는 처량하고 주눅 든 마음이 사라지고, 한없이 기쁘고 행복해졌습니다. 
  우리는 그 순간부터 추석아침밥상의 추억을 갖게 되었어요.
지금 문득, 그때 제가 딴생각을 품을까봐 할머니께서 그토록 마음 써 주신 것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우리는 할머니의 그 밥상이 그리워서 추석 때마다 두어 번 더 왔답니다.
 이후, 아이들은 중국으로 조기유학을 떠났고, 저는 한국에서 피아노 교습으로 유학비를 벌어 보냈죠. 큰아들이 작년에 칭화대학교에 들어가고 작은아들도 이번에 칭화대학교에 합격했어요. 작은아들은 형을 너무 좋아해서 학과조차도 형처럼 영문과를 들어갔지요. 이렇게 잘 자란 아이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3년 전에 돌아가셨다니 ……  너무 뵙고 싶었는데…….
나는 우리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애들 엄마가 고마웠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자는 제안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애들 엄마도 우리 어머니처럼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이 추석에 그 엄마의 두 아들도 추석아침밥상을 떠올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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