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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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편지
  • 김종례(시인, 수필가)
  • 승인 2021.06.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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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신을 다해 자맥질하던 여름의 뿌리들이 생명의 지느러미 다 토해내는 6월에, 내게 편지 한통이 날아왔다. 우주 어디쯤서 달려왔는지 내 감각을 깨워주고 가르치는 바람의 편지이다. 비몽사몽간에 읽어버린 편지의 시작은 이러하다. ‘계절의 감각과 순환의 교류를 감지하며, 자연과 생명의 소리와 소통하며, 우주의 리듬을 즐기는 6월이기를 바라며! 싱그러운 진록을 보내는 바이다.’계절색 진록은 여름 아침에 가장 찬란하다. 녹빛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고 마음을 튼실하게 받쳐주는 건강색이다. 세상에 지쳐버린 마음에 회복의 휴식을 제공하고, 지친 눈에도 평안을 주는 치유의 색이다.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조물주의 마음이 느껴지는 평화의 색, 녹빛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경이롭고도 돌발적인 표현도 서슴치 않으면서‘정숙한 사랑의 경계를 넘나들며 우주를 얼싸안고 사랑을 하라’고 권유하며, 붉은 장미 백만 송이도 던져주었다. 6월에만 고백할 수 있는 편지의 상반부를 읽다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잡초를 뽑아본다. 잡초를 뽑다가 웬지 마음이 홀가분해지며 위로를 받기는 하였지만, 내 마음의 잡초는 못 뽑아내는 인간의 한계점을 스스로 알아차린 하루가 되어 버렸다. 편지를 완독하지 못하고 하루해를 서산으로 넘겨버린 이유가 되었다.

 오늘은 감나무 그늘로 숨어들어 어제 읽다가 접어둔 편지의 중반부를 살펴본다. 앙금 박힌 팔딱거리는 심장으로 써 내려갔는지, ‘기필코 살을 째는 통증쯤은 감내할 수 있어야 사랑한다 할 것이다.’라며, 사랑의 아픔까지도 염려해 주는 진록빛 연서이다. ‘지금 우주 생태계는 순환의 이치와 우주 운행의 질서를 지켜가며, 한 다발의 농작물과 한 송이 꽃을 위하여 일제히 협연중이다. 신의 섭리에 순응하는 확고한 신념으로 폭염과 비바람을 이겨내는 중이다’라고, 6월의 근황을 낱낱이 고백하였다. 아마도 점점 원초적인 모습을 상실해 가는 내게도 ‘한낱 이상에만 머무르지 말고 뿌리의 액션처럼, 6월의 정원처럼 역동적인 삶을 살라.’고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정원의 풀 한포기, 꽃 한 무더기, 나무 한그루도 그냥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란다. 폭염과 소낙비 한 줄금에 생명줄이 여지없이 끊어지는가 싶었지만, 이따금 마실 오던 내게 제 속을 다 털어내기도 하였지만, 저희들 나름대로 한해의 역사를 쓰느라 용트림하고 인내하며 예까지 온 것이니라.’고 써 내려갔다.
 사람도 그러하다! 미로에서 방황하던 젊은 날의 멍에가 발목을 잡기도 하였지만~ 흙길을 완주했는데도 꽃길 찾기가 힘겹고 멀기도 하였지만~ 도약과 좌절을 반복하면서 예까지 달려오지 않았던가! ‘어두운 먹구름이 지나서야 광명의 햇살은 비추이고, 성장의 기쁨이 있으면 추락의 위기도 다가오는 게 우주의 섭리란다. 사람도 나무처럼 희열과 아픔을 묵묵히 병행하며 수용할 때, 조화로운 삶을 얻을 수 있단다.’라며 교훈을 준다. 역경과 고난이 때로는 유익이 되었음을 깨달아가며, 다시금 자연의 위력을 묵상해 보는 6월이다.
 
 6월의 편지 하단부는 지쳐버린 마음과 몸을 치유하라고 불러주는 한곡조의 노래가사이다. 가슴 깊은 곳에 묶여 있던 삶의 쇠고랑을 하나 둘씩 풀어주며, 오래된 내 환부까지 치유해주려는지 바람결에 들려주는 평화의 목가이다. 생의 풀뿌리에 걸려서 흐르던 눈물위에, 삶의 돌밭에 넘어져서 흐르던 핏물위에, 마음의 폭풍까지 잠재우는 영혼의 묘약 옹달샘이다. 삼복더위의 갈증과 생의 목마름이 엄습하는 날이면, 옛 고향 산모롱이 어디쯤엔가~ 감로수처럼 퐁퐁퐁 솟아나던 맑은 옹달샘이 그리워진다. 마음의 때까지 말끔히 씻어낼 수 있는 옹달샘 하나 파고만 싶어지는 오늘이다. 생각과 시름이 고여도 오염되지 않고. 날마다 생의 번뇌를 씻어줄 수 있는 청량한 옹달샘 한 사발 마시고 싶어진다.
 쉽게 지울 수 없었던 지나간 세월의 옹이를 달래고 위로해 주는 자유의 대서사시! 6월의 편지를 다시 바람에 날려 보낸다. 누구인가 이 편지를 다시 읽으면서, 힘겨운 영혼이 치유되고, 삶의 여정에 하늬바람이 불어오기를 기원하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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