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흐르다 산을 만난 곳, 산대(山垈)에 사람이 모여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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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흐르다 산을 만난 곳, 산대(山垈)에 사람이 모여 산다”
  • 박진수 기자
  • 승인 2021.05.06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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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의 명소길(48)- 한강의 발원 달천을 따라 문화와 역사를 만나는 길

모든 길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길을 오가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도 하고 역사의 중요한 이야기도 남긴다. 보은의 길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훼손되지 않은 자연환경과 국토의 중심에 위치한 지정학적인 연고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다양한 전설이나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길, 그냥 편한 마음으로 걷기 좋은 길, 자연과 함께 걷고 싶은 숲길, 그 모든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오대천과 오대마을 전경.
오대천과 오대마을 전경.

세속을 멀리한 속리산 법주사를 시작으로 작은 계곡들이 만나 사내천으로 흐르고 이 사내천은 법주사 땅을 벗어나면서 달천이라는 이름으로 흐른다. 보은군의 달천은 대한민국의 수도의 젖줄인 한강으로 흐른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하천의 줄기마다 걸쳐있는 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속리산면 백석리를 벗어난 달천은 산외면 원평리를 지나면 오대리와 산대리를 감싸며 마주보면 굽이쳐 흐른다. 원평리를 지나 이 오대리앞 달천을 오대천이라고 불릴 정도로 오대리의 오대천은 마을의 큰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오대리앞 오대천은 예전부터 맑은 물에서 자라는 물고기가 많아서 천렵꾼들의 명당이라고 전해질 정도이면 오대천은 오대리의 마을이 형성된 가장 큰 자연적인 지형임을 말해주고 있다. 한여름 마을 어른들은 천렵을 하고 마을 아이들은 목욕을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마을이다. 
오대리의 처음 마을이라 불리는 원오대 마을은 지금의 마을 중간에서 동쪽에 위치하여 이 원오대마을 동쪽에 있는 상사골, 감사를 지낸 함양 박씨 묘에 상석을 세워서 상석골로 불리다 상사골이 위치한 산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이 산 이름이 바로 ‘여리비똥’ 이라 불린다. 여리비똥은 머리를 빗는 얼레빗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어리비’ 는 ‘얼레빗’ 이 변한 말이다.
이 여리비똥 서쪽에는 1500여평 정도의 넓은 버덩, 집터 위에 위치하여 ‘대위펀던’ 이라 부르던 것이 변해 대구펀던이라 불리는 곳이 있다. 대구펀던의 넓은 들과 마을앞 오대천, 여리비똥산등이 오대리 마을의 오랜 역사를 들려주고 있었다.
오대천을 따라 10여분 걷다보면 산대리 마을이 나온다. 하천 우측 능선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산 정상에 예전 산대초등학교 교사가 보인다. 이 산대리를 중심으로 원평, 오대, 길탕리 마을이 얼마나 큰 마을이었는지를 보여주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폐교가 되어 교사만 남아있지만 학교의 위치가 이 산대리를 중심으로 달천의 상류와 하류지역 마을을 아우르는 중심에 위치해 있어 큰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었다.
이 산대리에는 김경세충렬문이라는 유적이 남아 있다. 김경세는 1624년 무과에 급제했으며 이어 선전관 충청도 수군절제도위가 되고 1627년에는 병조참판에 올라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1636년(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19명의 의사와 더불어 의진을 구성 광주의 험한내에서 청군과 대결해 장렬히 전사했다.
순조 때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져 병조판서에 추증됐으며 충경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남편 김경세의 시신을 찾아와 장례를 마치고 자결하여 남편의 뒤를 따라간 순흥 안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해 1824년(순조 24년)에 명정되어 합설로 세워진 정문이다.
이 정문이 있는 산대리앞 달천 줄기는 인접한 산과 만나 큰대를 형성하는 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천을 따라 걷다보면 산대교가 나온다. 산대리 입구에 있는 약 50m의 콘크리트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는 산외면의 면소재지인 구티리와 내북면 창리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산대교와 달천과 접해있는 서쪽마을을 신개울이라 불리고 이 신개울에서 남쪽으로 원산대, 신개울에서 동북쪽에 있는 재경굴, 혹은 개궁골, 재동이라 불리는 마을이 있다. 신개울에서 쟁골고개를 넘어가면 지금은 산대2구인 이 재경골 마을은 약 200년전에 문화 유씨의 재궁이 있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는 2007년부터 '농어촌테마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농어촌 테마공원 조성 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바 있다. 이 공원에는 보은군내 역사 유적지와 관광지 등을 축소해 만든 미니어처 공원이 있고 지역 주민들이 직접 제작한 볏짚 공예품 전시 및 체험을 할 수 있는 체험관, 농산물판매장, 공연장, 회의실 등이 갖춰져 있었다.
지금의 산대2구는 일제 강점기 창씨개명을 반대했던 문화유씨의 이야기를 담은 비석과 비문이 설치돼 있고 체험관에는 창씨개명 관련 자료도 전시해 놓았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일제 강점기 전국적으로 이뤄진 창씨개명에 반대해 모진 탄압을 받았으나 끝내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세 충렬문.
김경세 충렬문.
산대리 하천 전경.
산대리 하천 전경.
산대리 쟁골고개.
산대리 쟁골고개.
산대리 농어촌테마공원.
산대리 농어촌테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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