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가일몽
상태바
남가일몽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21.03.11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동도 물러갔나 보다. 봄비를 맞으며 부풀어 오른 땅위에 온갖 잡풀들이 다시 고개를 내민다.
유난히 무공해 식탁을 견지하는 아내의 고집이 또 걱정이다. 지난해도 무거운 예초기 팔랑개비에서는 불이 나는데 그것 들고 다니느라고 고생도 많이 했다. 힘든 작업 후에 비라도 오면 갑자기 더 크게 밀고 올라오는 놈들 때문에 헛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또 기지개를 펴는 저것들을 보니 무섭기까지 하다. 가을에 불을 질러서 떨어진 씨를 태워 없애는 것이 상책인줄은 알았지만 산불감시원들의 날카로운 눈길이 무서워서 그 짓도 못하고 온 것이 후회막급이다. 어떻게 하나? 하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하루살이 몇 마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까짓 하루를 살자고 요것까지 나왔구나 하면서 손을 흔들어 떨친다. 
이처럼 우리는 매사를 자기위주로만 생각하게 된다. 시간개념도 인간중심으로만 생각하게 된다. 하루살이에게 하루가 일생이라면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어린이요 청소년기에 해당할 것이다.
 옛날 중국 당나라시절 양주(陽州)땅에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회화나무(槐花木, ‘삼정승나무’라고도 함) 아래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깊은 잠에 골아 떨어졌다. 꿈속에서 그는 곧장 나무구멍 속으로 몸이 쑥 빠져 들어갔다. 잠시 후 깨어나 보니 두 사람이 다가와서 자기네 왕이 모시고 오란다고 했다. 비몽사몽간에 그들을 따라 간곳이 ‘괴안국(槐安國)’이라는 나라였다. 국왕은 그를 환대했고 과거에 급제하여 왕의 부마가 되고 남가군의 태수자리에 올랐다. 슬하에 다섯명의 아들과 두명의 딸을 두고 백성들의 칭송을 받으며 꿈같은 20년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차츰 주위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왕은 순우분에게 속세인 고향에 다녀오라고 했고 관원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갑자기 관원의 큰 소리에 눈을 번쩍뜨니 지금까지의 일이 한바탕의 꿈이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나무구멍을 보니 개미집이었다. 다시 나무의 남쪽으로 난 가지에 보니 네모난 개미집이 있었는데 역시 남가군의 모습이었다. 해가 저물고 어두워서 내일 다시 보기로 하고 돌아갔다가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다시 가보니 간밤 풍우에 개미집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순우분의 개미왕국에서 20년의 세월은 인간세상에서 순우분이 술에 골아 떨어졌던 한순간이었다. 따뜻한 봄날 한바탕의 꿈(一場春夢)을 꾼 시간이었다.
이 이야기는 이공좌의 “남가기(南柯記)”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다. 모든 세상사가 꿈같이 허망한 것이라는 것과 개미왕국의 20년이 인간세계의 한 순간이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결국 시간과 세월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거리의 원근, 물체의 대소, 힘의 강약 등은 모두 비교대상과 비교하여 말하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비교대상이 없다면 그것이 큰지 작은지, 혹은 먼지 가까운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하찮은 하루살이가 하루를 사는 것이 우리 인생 60년을 사는 것과 상대치로 비교해서 그렇지 절대치로는 모두 같은 일생인 것이다. 태양주위를 도는 위성 중에 신비한 푸른색을 띈 천왕성이 있다. 이 별은 토성과 같은 고리가 있지만 토성과는 다른 회전축을 가지고 있어서 거의 빙판위에 누운 상태로 84년을 주기로 공전하고 있다. 공전주기로 볼 때 지구의 1년은 곧 천왕성의 84년에 해당한다. 천왕성에서 한 살 먹은 생명체가 지구에 오면 84살이다. 삼국유사, 성경 등에서 나오는 전설 같은 이야기에 인간이 수천, 수백년을 살았다는 말이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엄동이 물러가기가 무섭게 돋아나는 저 풀들과 하루살이를 보면서 세상사는 모두 상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아참, 오늘은 먼저 냉이를 캐게 하고 그 위에 독한 근사미를 쳐서 풀싹을 아예 없애버리자고 설득해 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