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행
상태바
소확행
  • 오계자 (소설가)
  • 승인 2020.06.18 0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갑자기 매점 문이 열리며 초등학생 넷이 들어오더니 “감사합니다.” 하면서 거수경례를 하고는 애국가를 부르는 게 아닌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얼떨결에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노래가 끝나고 한 아이가 하는 말, “할머니 고맙습니다. 엊저녁에 라면 하나도 못 사먹는 친구에게 할머니가 라면도 주고 생수도 주면서 쓰다듬어 주시는 거 보고 우리 감동받았어요.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사세요.” 하면서 다시 경례를 하고 나갔다. 나야말로 진실로 감동이었다. 꿈나무들의 마인드가 저렇게 아름답고 귀엽고 밝은데 어찌 우리의 미래가 어두울 수 있겠는가, tv뉴스를 보다가 흉악범이 등장하면 어른들은 “세상이 어떻게 되려구 쯧쯧쯧” 혀를 차며 걱정 하신다. 그때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랬는데 요즘은 학생들을 접하면서 우리의 미래는 희망적임을 자주 느낀다.
  지난해다, 청소년 수련원의 매점을 해보라는 제의가 왔다. 하루 너더댓 시간이면 되는 걸 놀면 뭐하느냐고 쾌히 승낙하고 시작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재밌다. 나는 초등학생들이 제일 반갑다. 물론 매출로 본다면야 중학생이 훨씬 더 높지만 어린 아이일수록 더 귀엽고 재밌다. 쭈뼛거리며 돈만 만지고 있는 아이는 분명 돈이 모자라는 거다. 얼마 모자라느냐고 슬쩍 물어보면 백 원 또는 2~3백 원, 때로는 좀 더 높은 경우도 있지만 “내가 빌려 줄게 나중에 어른 되면 갚아.” 하면서 모자라는 동전을 손에 쥐어 준다.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이 세상을 다 가진 듯 좋아한다. 나도 그 순간이 제일 행복하다. 물론 눈 속이려는 아이도 간혹 있다. 그 아이를 위해 지적해서 버릇을 고쳐야 된다는 생각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또래들 앞에서 붙잡아 기죽이고 어깨 쳐지게 하는 것은 자칫 왕따로 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일단 그냥 넘어간다.
지구상에서 생명을 가진 모든 동식물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면 물론 생명이다. 이것은 동식물의 본능이다. 하지만 인간세계에선 조금 달라야 되는 거 아닐까. 생명 못지않게 본능적으로 소중한 것이 양심이어야 한다. 선인들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를 지혜, 아이큐 등을 꼽는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 의식이나 마음씨, 즉 양심이 아닐까 싶다.
  학생들이 2박 3일 수련회를 오면, 딱 한 번 라면이 허락 된다. 둘째 날 밤, 수련회의 절정인 캠프파이어가 끝나는 시간이다. 얼마나 촐촐한 시간인가. 아이들은 라면도 꿀맛이지만 분위기가 더없이 행복한 꿀맛이다. 저쪽 뒤 기둥에 기대 선 아이를 발견했다. 슬그머니 가서 “돈이 없구나?” “예” 나는 두말없이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어 물 한 병과 같이 준 것을 반 친구들이 알고 아침부터 와서 애국가를 부른 것이다. 덩달아 나는 큰 업적이라도 세운 것처럼 보람되고 행복했다.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유머감각까지 좋은 아이들의 마인드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앞으로 사회생활의 필수가 될 유머 감각은 지식 못지않게 소중하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꿈나무들인가. 어떻게 내 앞에 와서 노래 불러 줄 생각을 했을까. 참으로 기특하고 재밌다. 이 맛에 나는 하루의 시작이 즐겁고 콧노래가 나온다. 어제는 귀요미가 천원을 들고 와서 “할머니 잘못 거슬러 주셨어요.” 했다. 나는 모자라게 준 줄 알고 보니까 6천원 줘야할 것을 7천원 거슬러 준 거란다. “너의 착한 마음에 할머니가 감동이다.” 하면서 꼭 천원이 넘는 과자 한 봉지를 쥐어 준다. 그 아이는 얼마나 흐뭇하고 행복할까, 아마 지금 내 기분과 같으리라. 라면 하나로 인해서 기가 꺾인 한 아이에게 행복을 주었고 그 친구들까지 깨달음을 주었다. 앞으로도 아마 친구들이 그 아이 접하는 마음과 태도가 전과는 다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확행이다. 소확행을 느끼며 엮어가는 우리의 미래는 밝고 희망적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