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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시대의 기적
[1429호] 2019년 05월 30일 (목) 남광우 (보은신문 이사) webmaster@boeuni.com

  5월은 기념 할 일이 참 많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말고도 근로자의 날(1일), 유권자의 날(10일), 부처님오신 날(12일), 가정의 날(15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등 달력에 표시된 날만도 16개나 된다. 거기다 동문회나 체육대회도 5월에 몰려있어 어떤 분들은 행사 참석만으로도 분주할 듯하다.
 
 한 주 전 주말 나는 뜻하지 않은 잔칫상을 받았다. 모교 동문회에서 후배들이 올해 환갑이 된 내 동기들을 무대 위로 호출해 떡케이크와 샴페인으로 축하를 해줬다. 어떤 후배는 내가 나이 먹는 게 안타까웠던지 '벌써 환갑이라뇨!' 라며 축하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단 인사를 했다.
 
 100세 철학자로 유명한 김형석 교수는 얼마 전에 쓴 글에서 자신은 인생 최고의 황금기가 60부터 80세 까지였다고 썼다. 그 시기엔 직장이나 금전, 자녀교육의 부담에서 비켜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게 되어 교수시절보다 오히려 글도 많이 쓰고 강연도 많이 했단다. 나도 인생의 황금기를 60부터 80까지라고 밝힌 그분의 견해에 공감한다. 아니 공감하기보다 그렇게 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인생의 황금기에 접어든 나는 이제 다른 분들 축하를 기분 좋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럼에도 환갑을 맞은 내 마음 한 편에 슬픔과 회한이 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부친은 내 나이보다 젊으셨을 때 돌아가셔서 일생동안 삶의 여유라곤 가져보지 못했다.
 
 내 앞의 세대, 즉 아버지 세대는 1920년대와 30년대에 태어났다. 그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라를 잃은 초라한 백성이어서 이미 나라의 주인은 조선총독이었다. 이방인처럼 그들은 운명적으로 고난을 짊어지고 있었다.
 
 토지개혁 이전 시대에 민초들은 땅 한 평을 제대로 갖지 못했다. 대부분 소작농으로 일 년 내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렸는데 더하여 일제의 수탈과 만행으로 살림은 더욱 피폐했고, 징병과 징용까지 당했으니 그 비참함을 후세들은 상상하기도 어렵다.
 
 해방 후에도 그 세대의 고난은 계속 된다. 6.25전쟁은 상처에 상처를 더했고, 배움이 크지 않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소처럼 열심히 일해 작은 농토라도 갖는 것 뿐 이었다. 자식들 배 곯리지 않도록 애를 많이 쓰셨다. 그럼에도 자식들 가르치는 데는 치열했다. 그러기 위해 뼈와 살이 부서지도록 일만 했다. 이런 아버지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의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다. 여러 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아버지는 작은 양복점을 운영하며 일곱 남매 모두 대학에 보내는 것이 삶의 목표였다. 다행히 그중 다섯을 대학에 보낸 아버지는 자식들이 공직에 나가길 바랐다. 그중에서도 교직으로 갈 것을 은근히 강조하셔서 '내가 지인들을 보니 직업은 선생이 제일이더라'며 교사 출신 친지들 얘기를 종종 했다. 제자가 찾아 왔더란 얘기며 제자의 주례를 섰다는 얘기를 들으면 부럽다 했다. 선생은 보람도 큰 직업이니 꼭 교사가 될 것을 염원했다.
 
 그래선지 아버지의 슬하에 딸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 사위와 손자를 합쳐 모두 열 두 명이나 교사가 되었다. 그 중 셋은 교장으로 재직했고, 장학사인 손자를 비롯해 국·영·수 과목과 초·중·고·유치원 교사까지 골고루 교직에 있다. 비록 환갑을 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아버지는 당신이 소망하는 바를 어느 정도 이뤄 하늘에서나마 행복하실 것이다.
 
 5월의 많은 기념일 중엔 가족과 관계된 날이 많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다. 이제 이틀 밖에 남지 않은 5월, 이 땅에 사신 모든 아버지들, 특히 광복 이전에 태어나 온갖 고생을 다하고, 가난한 가정을 일으켜 자식들의 성취를 도우신 우리들의 아버지, 젊은이들에겐 할아버지가 되시는 그분들의 기적 같은 삶과 노고에 저절로 고개 숙여지는 5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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