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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의 봄
[1425호] 2019년 05월 02일 (목) 김 종 례 (시인, 수필가) webmaster@boeuni.com

 겨우내 웅크렸던 인고지심의 뿌리들이 여기저기서 제 근본을 알리느라 떠들썩했던 4월이 갔다. 우주의 정기를 발산하며 꽃 소식이 난무하는 이맘때면, 나는 언제나 고향의 봄이 궁금하고 또 그리워진다. ‘나의 살던 고향도 꽃 피는 산골이었네.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춤추던 그곳을 꿈엔들 차마 잊으리요~~’꽃 대궐 속에서 보냈던 천진난만 어린 시절이 그리움의 메카로 남아있지 않는 사람 그 어디 있으랴마는, 내 고향의 4계는 춤을 추며 다가와서는 종종 내 지면에다 그리움의 실체를 쏟아내게 한다.
 노오란 개나리가 앙증맞은 아가별을 흔들어대고, 새색시처럼 화사했던 벚꽃의 정결이 꽃비로 산화하던 지난주, 나는 불현듯이 고향길로 차머리를 돌렸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계곡을 휘돌아 흐르는 시냇물 소리가 고요와 적막을 깨트린다. 이미 목련화, 홍매화, 진달래 등이 세월의 상처처럼 붉은 흔혈을 남기곤 사라졌고, 새하얀 조팝꽃이 순백의 화신처럼 피어나서 나를 반겨주었다. 시냇물 건너 야산에서도 산 벚꽃이 난분분 휘날리며 손짓을 해대었다. 고향의 봄은 누구나의 가슴마다 이다지도 처연하게 꽃잎을 날려주나 보다. 물레방아 삐걱대며 돌아가던 자리에는 이름 모를 잡풀들이 우거져 간헐지로 변하였지만, 어디선가 동무들과 함께 불던 버들개지 풀피리 소리, 커다란 바위틈에서 윙윙대던 땅벌의 합창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온다. 얼음 풀린 냇가에서 짝을 찾던 장기와 까투리도 오늘 날지 않고, 봄소식을 물고 지지배배 날아들던 제비도 오늘 오지 않는다. 유수처럼 흘러간 시간의 흔적들을 더듬자니 세월의 무상함이 몰려와 웬지 눈물이 난다. 사라져간 것들에 대한 마르지 않는 그리움은 아름다운 영상이 되어 바스락대다가 이렇게 눈물나게 하나보다. 내게도 울어볼 고향의 추억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으리라 생각하였다.
 긴 세월 동안 그리움의 가락으로 늘 내 곁에서 서성대던 언덕길을 올라본다. 민들레, 마타리, 망초대가 피고나 지던 언덕에서 해가 지도록 사방치기 했던 그 동무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늙어가고 있을까? 한번 헤어지면 다시금 만날 날이 쉽지 않다는 것을 그때 그 시절에는 왜 몰랐을까~~  동네 어른들도 여기저기 봉긋봉긋한 무덤 속에서 고향을 지키시는지 적막하기만 하다. 할머니의 자장노래 가락에 솔솔 낮잠에 빠졌던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어린 시절 추억을 불러내기에 흡족한 진풍경들이 가득했던 언덕은 진정 보배로운 터전이 아닐 수 없다. 자연의 진리와 섭리를 스스로 터득하고 감성지수 만점인 인성으로 자라날 수 있었던 곳이기 때문이다. 발아래를 내려다보니 때 이른 보리밭이 무성하게 푸르다. 눈부시게 푸르던 보리밭에서 날아오르던 종달이 노랫소리 오늘 들리지 않건만, 밭고랑 너머에서 웃어주던 찔레꽃 억새풀 하얀 미소가 그리워서 오랜만에 보리밭도 걸어보았다. 지금은 보리밭 호밀밭이 낭만과 감성의 모태처럼 반가운 추억거리지만, 역경의 삶을 이겨낼 지혜를 터득하였던 보석같은 가르침과 진리가 숨겨있던 곳이다. 가뭄과 격동으로 황토 진흙 마르는 내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던 보리누름 한철, 힘겹게 넘기던 보릿고개가 떠올라 속절없이 또 눈물이 난다. 보리밥 한 덩어리를 자식에게 먹이느라 당신은 배부르다고 딴청을 피우시던 어머니! 어디선가 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려와서 연달아 눈물이 난다. 채우지 못하던 빈곤의 갈증과 환경의 고난은 연단을 심어주고, 연단은 소망의 닻을 내걸 수 있도록 삶의 탄탄한 발판이 되었으리라~~ 자연의 순수함과 진솔함 속에서 파라다이스 같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사람은 누구나 고향의 진가를 알고 있으리라~~
 해거름 찬란한 황혼아래 청보리 파도 물결 속에 숨어있던 낭만의 객은 또 어디로 갔을까! 그 뉘라도 금방 휘파람을 불어대며 내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아서 두리번거려도 정녕 아무도 없다. 보리는 보리끼리 꽃잎은 꽃잎끼리 서로 살랑대며 함께 놀자고 손짓을 할 뿐이다. 여기저기 빈 골목마다 사람의 그림자 얼씬거리지 않고 낯선 바람만 가득히 불어오는 오늘이다. 떠오르는 태양의 찬란함과 들녘의 바람과 꿈결 안개 속에서 청아하게 피어나던 들꽃들은 또 어디쯤 숨어서 여름을 기다리는 걸까! 산천도 의구하지 않은 고향의 봄은 지금 그저 묵묵부답이다. 내 영혼의 봄날에 울려 퍼졌던 봄의 교향악이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하모니의 극치였음을 정녕 그 때 그 시절에는 왜 몰랐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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