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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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 남광우 (보은신문 이사)
  • 승인 2019.04.18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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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침내 봄이 왔고, 봄이 무르익었다. 그러나 봄날은 즐길 사이도 없이 쉬 지나간다. 보은 출신 김사인 시인은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다는 말처럼 속절없이 그렇게!‘ 인생에서 아름다운 시절(화양연화)은 재빨리 흘러간다.

 4월, 날씨가 좋아 잔인한 달이라 했나 꽃이 아름다워 잔인한 달이라 했나? 이 계절에 짝이 없어 홀로 된 이도 있고, 일이 없어서 또는 일이 많아서 잔인하다. 늙어 한나절 해가 무심코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슬프다. 입시에 지친 중. 고생, 취업의 꿈이 좌절된 청춘은 괴롭고 쓸쓸하다. 모두 이유가 있어 잔인한 4월.

 미국의 노벨상 작가인 T.S 엘리옷의 시집 《황무지》.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기억과 욕망을 뒤섞고, 봄비로 잠든 뿌리를 뒤흔든다. 그 겨울은 따듯했다.' 란 구절은 한국사회의 혁명적 변화가 유난히 4월에 많아 흔히 쓰는 관용구가 되었다.

 김지하 시인은 ‘새 봄’이라는 시에서 ‘벚꽃 지는 걸 보니/ 푸른 솔이 좋아/ 푸른 솔 좋아하다 보니/ 벚꽃마저 더욱 좋아’ 라고 읊는다. 화려했던 벚꽃이 바람 한 자락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면 푸른 솔을 좋아하게 된다. 그러나 사시사철 푸른 솔을 바라보고 있으면 때론 벚꽃처럼 화사하게 살다가 홀연히 지는 것도 아름다운 인생일 것 같아 애잔하다.

 지나간 겨울은 나라의 경기가 좋지 않았고, 흰 눈 또한 푸짐하게 내린 적이 없다. 시골 거리마저 한산해 크리스마스 캐롤 한 곡 들리지 않았다. 화마는 태백산맥을 그을리고 많은 사람을 아프게 했다. 이제 마침내 봄이 찾아온 것이다. 모진 세월 지나 봄이 왔지만 봄 꽃잎은 하룻밤 내린 비에 이내 사라지니 오래된 노래 곡절이 위로가 되는 봄이다.

 늦겨울부터 나는 '자우림'의 김윤아가 부르는 '봄이 오면'을 자주 듣는다. 기교없이 피아노에 맞춰 부른 노래를 좋아 한다. '봄이 오면/ 봄바람 부는 연못으로/ 당신과 나, 단 둘이/ 노 저으러 가야지/ 봄바람 부는 흰 꽃 들녘에/ 시름을 벗고/ 다정한 당신을 가만히 안으면/ 마음엔 온통 봄이/ 봄이 흐드러지고...'

 '4월의 노래'도 좋다. 뻥 뚫린 4차선 국도를 드라이빙 하며 혼자 불러본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에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 멀리 떠나와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나는 봄날 작은 소풍가방에 괴테의 소설책과 니체의 잠언집을 넣고 기차를 타는 상상을 한다.

 4월엔 왠지 '비가' 라는 노래를 듣고 싶다. '아, 찬란한 저 태양이 숨져 버려 어두운 뒤에, 불타는 황금빛 노을 멀리 사라진 뒤에, 내 젊음 내 노래는 찾을 길 없는데, 들에는 슬피 우는 벌레소리 뿐. 아 별 같이 빛나던 소망 아침이슬 되었도다!' 4월이 청춘을 상징한다면 벚꽃 지는 날 청춘을 날려 보낸 이가 부르는 노래다.

 4월을 화려하게 빛내주는 노래는 장범준의 '벚꽃엔딩'이다. 고음과 기교가 있어 감히 따라 부르진 못하지만 커피숍 마다 이 노래가 울려 퍼지니 저절로 흥얼거리게 된다.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그대여!' 언젠가부터 이 노래는 젊은이들 사이에 전설이 되었다.

 4월은 노래만큼이나 우울감과 행복감이 교차한다. 올 초 싱가폴에 갔더니 현지에 사는 친구는 ‘아무리 잘 살아도 1년 내내 계절의 변화 없이 섭씨 30도에 산다는 건 지옥’이라며, 그래서 한 해에 한 두 번씩 한국에 오지 않을 수 없단다. 우린 겨울이면 봄을 기다리고, 봄이 오면 여름 해변을 기대한다. 4계가 있어 돌아올 계절에 대한 꿈이 있고 꿈꾸는 즐거움이 있다. 힘들어도 이 나라와 이 계절을 사랑해야 할 이유다.
 
 나는 나이가 꽤 되었지만 4월은 설레고 왠지 그런 설레임으로 가슴 부푼다. 다행히 올 봄 보은에 투자한다는 기업이 늘고 있다. 경기가 좋아지면 좋고, 평화가 오면 더욱 좋고, 만약 그 반대라도 봄날은 봄날이니 즐거워야만 한다. 잠깐 사이에 꽃은 피고 지며 ‘연분홍 치마 봄바람에 휘날리듯’ 그는 우리 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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