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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413호] 2019년 01월 31일 (목) 소설가 오 계 자 webmaster@boeuni.com

무슨 의미일까, 하늘이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고 있다.
벗어나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던 지인이 결국 오늘 떠났다. ‘해탈’이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시도 때도 없이 소리 내어 읊던 사람이다. 나와는 차원이 다른 영적 세계가 있는 듯 했다. 내가 자질구레한 일로 속상해 하면, 또 ‘해탈’을 읊으며 바람 같은 것이니 누군가를 탓하지도 말고 잘났네, 못 났네 평가도 말자며 얼기설기 어우러져 살자던 그가 날 위로하는 척 자신을 위로하던 사람이다. 분향소에 국화 한 송이 얹어주고 돌아오는 길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충북을 벗어나 경북 땅이다.
내가 이렇게 무거워 쩔쩔매는 것은 그에게 미안함이 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터를 잡은 것이 단순히 건강 문제도 아니며 맑은 공기를 찾아 온 것도 아니라고 했다. 가장 깊은 영혼의 감각이 절반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갈망에 빠져 능력 상실자가 되었다고 했다. 자연과 풍월을 핑계 삼은 것이지 즐기려고 온 것은 아니라 했다.
자주 만나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혼란이 과포화 상태가 되면 연락이 오곤 했다. 우리는 서로 말수는 줄이고 찻잔을 들고 먼 산만 바라보는 편이었다. 무언가 영혼의 상처가 분명히 있는 것 같은데 열고 싶은 마음자락보다 아직은 감추고 싶은 자락이 더 큰 것 같아서 기다리기만 했다. 어느 날, 곪은 부위는 매스를 대고 수술을 해야 아물 수 있다는 생각에 아픈 부위를 건드리고 말았다. 터졌다.
중학교 교사시절 못 볼 것을 보았는데 자기도 그 사실을 은폐 했단다. 교장선생님이 중2학생과 은밀한 관계 장면을 봤지만 모른 척 했단다. 그 아이가 임신을 하면서 부모가 알게 되었고 교장은 딱 잡아떼며 말도 안 된다고 하자 학생이 들킨 적도 있다고 했으니 당연히 부모님은 그를 찾아왔다.
“난 본 적이 없습니다.” 그 말 이후 지금까지 두 다리 뻗고 자본 적이 없단다. 게다가 훤히 보이는 사실을 그 아이 가족 중 누군가 제대로 밝히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더란다. 요즘은 온통 뉴스시간마다 미투(me too)이야기지만 30여 년 전이라 오히려 가족들이 쉬쉬 하는 것을 자기도 다행으로 생각했단다. 처음 목격했을 때 더 이상 이어지지 않도록 막았어야 했는데 자신도 어린 딸이 있으면서 외면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다니던 교회도 발을 끊고 혼자서 고통에 시달리다가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 나는 또 불난 집에 부채질을 했다. “그 아이 찾아가 보셨어요?” 했더니 찾아가면 상처가 덧날까봐 염려도 되고, 스승이 거짓말을 했으니 어떻게 제자를 보겠느냐며 용기도 없더란다. 내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그를 만나는 횟수가 줄었다.
그는 거짓말에 대한 법적 처벌은 면했다. 허나 평생 동안 지기를 펴지 못하고 낮선 땅으로 와서 살면서 스스로 벌을 받으며 허우적거렸다. 결국은 벗어나지 못하고 영혼은 삶의 불구자가 된 상태로 떠났다.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죄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양심을 속이고 영혼이 벌을 받는 것은 내면의 세계가 지옥이 된다. 영혼은 불구자가 된다. 그는 이렇게 가혹한 벌을 스스로 만들었다.
사람이 살면서 양심에 때가 묻었느냐 깨끗하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이 결정 된다. 언젠가 판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를 하고 있는 조카의 말이 기억난다.
“원리 원칙대로 지은 죄에 대한 판결을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 판사 복을 벗었어요.”
판결 받은 피고의 눈물을 볼 때마다 편치 못했단다.
나도 지금 양심이 꿈틀거리며 벌을 받는다. 은혜를 갚지 못한 상태라 양심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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