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고향에 오시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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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고향에 오시거든
  • 남광우 (보은신문 이사)
  • 승인 2018.09.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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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낼 모레부터 추석연휴, 민족의 명절이다. 얼마나 좋았으면 ‘늘 한가위만 같으라’ 했을까. 어렵던 시절 겨우 4-50년 전, 추석이나 돼야 양말 한 짝이라도 얻어 신을 수 있어 그날을 기다렸다. 보은인구가 10만이 준 지나간 장날, 트럭에 한 차 가득히 양말을 싣고 다니며 만원에 스무 켤레라고 선전 중이니 ‘양말의 시대’는 종쳤다.

 추석 귀성을 하려면 고속도로에서 여남 시간씩 고생하던 시절이 그립다. 꽉 막힌 도로에서 대소변 참으며 고향을 찾던 귀성인은 뭔 악담이냐고 할 거다. 어느 외국인 교수는 한국인의 귀성행렬을 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유를 알게 되었단다.

 한국사회에서 추석은 그냥 고향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도시에서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성공을 향해 질주했던 이유도 부모님과 고향이웃을 만나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일념이었다. 또래의 잘 나가는 친구를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절박한 결심을 한 것도 추석의 힘이었다. 한국인에게 가족은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고, 고향은 에너지 충전소였다. 그러니 귀향의 고생쯤은 그가 감내할 숙명, 그것이 한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달라졌다. 이제 내의 한 벌, 신발 한 켤레를 목 빠지게 기다리지 않는다. 윤택해진 지금에도 그 시절이 그리운 건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설렘과 반가움, 차례와 성묘, 효와 풍요로움 등 모처럼 ‘사람 사는 것 같은’ 그런 모습이 아쉬워서다.

 이젠 추석이란 게 그저 귀찮지만 잠시 한 번 고향 다녀가는 날이다. 형제들도 간만에 모였지만 간단한 안부를 물을 뿐, 기껏 둘러앉아 정치얘기 좀 하다가 고스톱 한판 치는 날이다. 부모 자식 간 마음의 거리도 돈이 해결한다. 돈이면 부모도 며느리도, 아이들과 할머니까지 다 좋아라하니 돈 푸는 이가 장원이다.

 처갓집을 더 편하게 생각하는 것도 요즘 젊은이들 마음. 고모보다 이모가 좋다. 아내의 눈치를 보며 남편은 불나게 처가로 향하고, 그토록 그리던 아들을 사돈에 빼앗긴 부모는 슈퍼에서 막걸리 한 잔으로 허기진 정을 채운다.

 간절한 보고픔이 없는 시대다. 보고 싶으면 아무 때나 전화하면 된다. 스마트폰 영상으로 손자, 손녀 재롱이 실시간 중계된다. 마음만 먹으면 퇴근 후 곧장 제 차로 달려올 수 있는 시대에 어떤 그리움이 있던가!

 성묘는 이미 대행업체가 대신하고, 차례는 의미가 퇴색됐다. 세상에 널린 게 맛집이니 차례음식은 아이들에겐 지루한 음식일 뿐, 송편과 적 쪼가리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가까운 일가친척, 친구 부모님을 찾아뵙던 풍습도 사라진지 오래. 남의 집 방문을 꺼린다. 가면 큰 실례다.

 변해버린 추석 세태를 아쉬워한들 전통이 살아나는 건 아니다. 한 번 무너진 전통은 되살릴 수 없다. 요행히 이번 추석은 징검다리처럼 연휴가 몇 차례 된다. 이때 고향에 며칠 묵어가시라! 속리산 세조길, 말티재 꼬부랑길, 아니면 삼년산성이라도 올라보길 권한다. 고향 흙 내음 한껏 맡으며 늙어가는 부모님 얘기를 귀담아 들어주는 착한 아들, 착한 며느리가 되어 보시라.

 끝으로 사족 한 말씀! 요즘 수도권 집값이 천정부지다. 몇 달 새 억대가 올랐단다. 행여 고향 와서 집값 자랑하려면 밥은 좀 사면서 하라. 그래도 당신의 우직한 친구는 차에 늙은 호박 한 덩이 실어줄 것이다. 고향은 당신의 성공이 자랑스럽다. 결코 당신의 성공을 배 아파하지 않는 곳, 그곳이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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