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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송인성, 진정 그가 그립다
보은의 향토문화, 독립투사 항일활동 숨은 공로자
[1392호] 2018년 08월 30일 (목) 이주용 (보은읍 어암리 출신, 글그림작가) webmaster@boeuni.com

 우리 보은군지에 수록된 항일 독립유공자는 모두 26명이다. 이들은 동학농민혁명부터 해방 전까지 활동한 분들로 크게 두 시기로 분류할 수 있다. 하나는 동학기인 1894년부터 1910년 한일합방까지이고,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인 한일합방부터 1945년까지다. 보은의 향토문화와 항일 독립투사 발굴로 보은발전을 위해 활동하다 먼저가신 아리랑 송진성 선생을 그리워하는 독자의 글 두번째 1910년 이후를 게재한다.  <편집자 주>
 

   
 
  ▲ 이주용 (보은읍 어암리 출신, 글 그림작가)  
 

 송인성 선생은 2년 뒤인 1993년 3월 31일 ‘보은신문’에 또 다시 기고를 하게 된다. 
지난 호의 내용이 한일합방 전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1910년 한일합방을 하고 난 뒤 1915년 을묘년 보은지역 항일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1915년 우리 보은지역에서 이상곤, 정운기, 맹선섭의사가 의병활동을 하다 일제에 의해 체포되어 형을 받게 되는데 송인성 선생은 이분들의 판결문을 소개하고 그분들의 공적을 설명하며 자신의 소회를 털어놓았다.
이 사건은 보은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보안법위반 혐의로 체포된 의병지도부 4인 중 이상곤, 정운기, 맹선섭 3인에게 내린 판결이다.
그 판결문의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대정4년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 제20호 판결
충북 보은군 탄부면 덕동리 이상곤 61세, 징역 2월에 처한다.
충북 보은군 탄부면 벽지리 맹선섭 50세, 징역 3월에 처한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지촌리 정운기 38세, 징역 3월에 처한다.
위 피고인들은 대정3년 음력 3월부터 이태왕(고종)의 밀지를 받았다는 김운로와 작당하고 전국적 연계활동을 통해 국내는 물론 중국에서까지 군자금을 모금하고 추수기에 보은의 각 면사무소를 습격해 탈취한 자금을 군자금으로 쓸 것을 모의했다.
특히, 보은 마로면장 박창빈의 집에 보관되어 있는 총기 수십정을 탈취하고자 구체적 모의, 실행직전에 체포된 바, 이들의 불온한 언동과 치안을 방해한 죄는 상당한 처단을 가함이 마땅하며, 검사인 산전준평의 주문에 따라 이에 판결한다.”
여기서, 이들과 함께 활동했던 김운로 의병장은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고 나서서 사형이라는 중형을 선고받고 대구형무소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했는데, 이 당시는 대법에 항고 중이었다.
김운로 의사는 탄부면 덕동 이상곤 의사 집안의 서당 훈장도 하고 그 집안의 족보(신축보)의 글씨도 그가 썼다고 한다.
 이상곤 의사와 막역지기 였던 김운로 의사는 출신지도 분명치 않고, 후손도 나타나지 않아 안타깝게도 그의 훈장조차 현재 보훈처 공무원의 책상 속에 보관되어 있는 상태이다.
정운기 의사는 진작부터 괴산지역의 항일독립유공자로 추앙을 받고 있다.
이미 1984년 대통령표창을 받았고, 그 해 묘비를 세우는데 참여한 60여 인 중에는 괴산의 국회의원, 군수 등 유력인사가 망라되어 있었다.
 맹선섭 의사는 탄부면 벽지리 출신으로 이상곤 의사댁을 빈번히 출입하며 연락책으로 맹활약하였다.
송인성 선생은 ‘보은신문’에 이 같은 사실이 보도 되었는데도 이분들의 일가친척들로부터 아무런 반응이 없자 안타까워하며 틈틈이 이분들의 후손을 찾는데 노력했다.
 송인성 선생은 이상곤 의사가 탄부면 덕동리에 근거를 두고 활동한 것에 착안, 덕동이 가평이씨의 집성촌이므로 가평이씨를 탐문해 많은 연락 끝에  이기종씨와 연락이 닿았다.
이기종씨는 펄쩍 뛸 정도로 반가워하며 뵙고자 했다. 이기종씨는 예비역 육군대령으로 강장하면서도 빛나는 지성이 송인성 선생에 못지않은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서로 연락이 되어 만난 송인성 선생은 ‘훌륭한 분의 자손을 뵙게 되어 영광’이라고 겸허하고 사심없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기종씨도 너무도 놀랍고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탄부면 덕동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집안 어른들로부터 큰 아버지 이상곤의사의 일을 단편적으로 옛이야기처럼 들어왔지만, 거기까지였고 그 역시 잊고 있었던 것인데 보은 사람인 송인성 선생의 제보로 각성의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이상곤 의사의 직계후손들은 일제치하의 고향에서 견뎌낼 수가 없어 일찍부터 외지로 흘러나가 멀리 부산까지 가서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 의사의 손자와 증손자는 타계하거나 늙었고 고손자는 아직 젊어 뭘 모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 후, 이상곤 의사 동생의 손자인 이기종씨는 백방으로 뛰어 ‘이상곤 의사 독립유공자 공적서’를 작성해 보훈처에 제출했다.
 그 속에는 판결문, 제적, 호적등본, 가평이씨 족보, 관직 임명장, 상소문, 편지, 시, 신문기사 등의 다양한 자료가 첨부됐으며 결국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이상곤 의사는 현재 국립현충원 묘역에 안장되어 잘 모셔져 있다.
탄압을 당하고 고통스러웠던 시절, 다들 자기의 생을 이어가느라 비루한 생활에 여념이 없었을 때, 나라의 정세를 직시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가시밭길을 걸어 나라를 되찾은 애국지사들의 푸른 기상과 붉은 넋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분들을 밝은 세상으로 드러내어 우리에게 알려 준 보은의 선각자  송인성 선생이 우리의 선지자다. 아, 아리랑 송인성 선생, 진정 그가 그립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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