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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지4 (한그루의 그늘막으로)
[1392호] 2018년 08월 30일 (목) 시인 김종례 webmaster@boeuni.com

 입추가 지나도 모른 체 외면하던 아열대 폭염은 처서가 지나고 태풍의 입김이 닿은 후에야, 제 볼일 다 봤다는 듯이 미적미적 달아나고 있다. 생명전자 태양과의 만남이 무섭기만 하던 여름이 물러가고, 거짓말처럼 가을은 다시 도래하나 보다. 아열대 무더위에 밤잠을 설치던 것은 비단 사람 뿐만은 아니었다. 아침부터 축 늘어져 생기 없는 화초들은 피자마자 산패한 심장처럼 퇴색해 버리기 일쑤였다. 직사포를 쏘아대던 열정의 파초도, 찬란한 삼채원 빛깔의 백일홍도, 정열의 화신처럼 서있던 배롱나무도 제 의지를 잃어버린 계절이었다. 온 들판에 대지의 신음소리 가득하고 바람조차 더위를 먹었는지 흐물흐물 녹아내리던 농작물로 내면의 경계조차 희미해져간 농부들의 심정을 어찌 한줄 글로 표현할 수가 있으랴!
 우리 밭에는 산 그림자가 드리운 고랑이 몇 개 있다. 해마다 남편은 그늘농사라고 불평을 했었는데, 올해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늘이 짙으면 농사가 안 된다는 얘기는 들었어도, 그늘이 있어서 농사가 그럭저럭 지어졌다는 얘기도 생전 처음 듣는다. 우리 집 마당에도 보배로운 감나무 그늘막이 두개나 있다. 하나는 땀을 식히며 소통할 수 있는 그늘 카페이고, 하나는 음지 화초를 기르고 꽃을 피우는 일석이조의 쉼터이다. 화초에도 아열대 고온에서도 꽃을 피우는 양지품종이 있는가 하면, 나무 그늘막 안에서만 제 본연의 빛깔을 선물하는 그늘품종도 있는 것이다.
 아이들도 그랬었다. 양지의 성향을 가진 아이와 음지의 성향을 가진 아이로 구분해 본다면, 어떠한 환경이나 걸림돌에도 잘 적응해 나가는 아이들은 땡볕이나 거친 흙에서도 꽃을 피우는 야생화와 흡사하다. 그러나 부모, 교사의 손길과 눈길이 자주 가야만 정상궤도에 진입할 수 있는 음지 성향의 아이들은 늘 안전한 그늘막을 필요로 한다. 부모의 그림자와도 같은 자식 또한 그러하다. 결혼하기 전부터 독립을 선언하는 용감한 탈출파가 있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부모의 그늘막 안에서 서성대기를 좋아하는 골드키즈형도 있다. 부모의 마음은 믿음직하고 씩씩한 양지의 자식보다 여리고 나약한 음지의 자식에게 더욱 애틋한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평생 떼려도 떨어지지 않고 서로를 철이 들게 하는 그늘막과 그림자의 관계이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해서 양지의 성향이 꼭 뛰어난 삶을 살거나 훌륭한 인물이 되고, 음지의 성향이 뒤쳐지는 삶을 꾸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성경에도 ‘처음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머릿돌이 되며…’약한 자가 강한 자를 누르는 반전의 법칙이 많이 적혀 있지 않은가. ‘양지가 음지 되고 음지가 양지 된다’와 일맥상통하는 우리의 속담이나 고사성어도 많기 때문이다.
 계절이 바뀌는 이 시점에서 새삼스럽게‘내 삶의 한그루 그늘막은 누구였으며, 나는 누구의 그늘막으로 살아 왔는지…’에 생각이 머무른다. 되돌아보면 우리 곁에 이런저런 그늘막이 존재하였기에 여기까지 무사히 오게 되었음도 깨닫게 된다. 가장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부모의 그늘, 제2 인생관문에서 만난 부부의 그늘, 학창시절 인연을 맺은 동무와 선후배의 그늘, 눈만 뜨면 바라보는 이웃사촌의 그늘, 그리고 여러 가지 신앙의 그늘 속에서 살아왔다. 오랜 세월 서로가 영혼의 심연을 깊이 들여다보며 기도해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 어떠한 그늘막 안에서라도 숙명적 인연과 돈독한 인과를 아름답게 승화시켜야 할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흔들리는 그늘막으로 인하여 그림자도 덩달아 애절한 춤을 추는 날도 많았지만…  서로의 가슴속에 바람소리 일렁이며 잠 못 드는 날도 있었지만…  내 그늘막 안에서 안식하는 영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지…  그늘막과 그림자의 인연으로 서로를 바라다 볼 수 있는 존재감!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이요 감사이기 때문이다. 한 그루의 그늘막이 되어 그 누군가를 품을 수 있는 인생나무로 성숙해 간다는 것은 자비로움의 실천으로 아름다운 축복의 길이기 때문이다.
  찜통 폭염과 씨름하며 가을의 길목에 서신 보은신문 독자 여러분!
 어두운 터널을 무사히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생겨나는 내면의 각성이 여러분에게 넘쳐 나시길 바랍니다. 새롭게 다가오는 계절의 기운을 교류하며 우주의 리듬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영육이 다시금 소생하도록 푸른 초장에 누이시고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그 분의 그늘막이 평온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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