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시름의 눈물이 가사에 젖네 : 秋雨 / 여승 혜정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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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된 시름의 눈물이 가사에 젖네 : 秋雨 / 여승 혜정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7.11.0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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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40】
사람의 마음은 조변석개라고 한다. 아침에 먹은 마음이 저녁에 변하는 것도 사람의 마음이다. 담배를 끊으려고 마음을 먹고 며칠을 참다가도 마음이 변해 작심삼일이 되는 경우도 많이 본다. 올곧은 마음을 먹고 수도에 정진했던 수도승이 규정된 승려의 길을 걷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승려의 길을 택해 금강산에서 수도에 정진했던 여승이 그만 승려의 길을 접고 속세로 환승하려고 몸부림치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구월의 금강산에 으스스 내리던 비
나뭇잎 잎사귀마다 가을을 울리구나
십년을 흐느낀 이 신세 눈물이 가사에 젖네.
九月金剛蕭瑟雨 雨中無葉不鳴秋
구월김강소슬우 우중무엽부명추
十年獨下無聲淚 淚濕袈衣空自愁
십년독하무성루 루습가의공자수

헛된 시름의 눈물이 가사에 젖네(秋雨)로 제목을 붙여 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혜정(慧定: ?~?)으로 금강산에서 수도했던 여승으로 생몰 연대와 행적은 알 수 없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구월의 금강산에 으스스하게 내린 비 / 나뭇잎은 잎마다 가을을 울리구나 // 십년을 소리 없이 흐느낀 이 신세 / 헛된 시름 눈물에 가사에 젖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으스스 가을비는 내리고]로 변역된다. 어린 나이에 출가한 어느 출가한 여승이 있었다. 독실하게 수도를 지만 가을이 돌아오면 더욱 쓸쓸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대로 여승의 길을 걸을 것인가 아니면 환속할 것인가에 대한 갈림길에서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외롭고 쓸쓸함을 달랠 길이 없어 또다시 한번 고민하는 엄숙한 순간이다. 후문에 의하면 결국 환속을 다짐하며 마지막 남긴 시문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망설이는 이럴 때가 많이 있다.
시인은 가을비가 내리는 모습을 자기의 눈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에 잠긴다. 분명 늦가을에 내리는 비는 시인의 눈물이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오는 가을의 절정 구월에 내리는 비가 으스스 소리를 내고 있음을 보고 수심에 찬 시상을 일으킨다. 회한에 젖는 눈물 젖은 여심이리라.
화자는 여승의 길을 걸었던 햇수가 십년되어 늘 소리 없이 울었던 자기 신세를 한탄하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마음 속에 환속의 결정을 못했기 때문이겠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리지도 못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번뇌의 늪은 깊을 수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하겠다. 화자의 처지를 여과 없이 나타낸 시심을 본다.
【한자와 어구】
九月金剛: 구월의 금강산. 蕭瑟雨: 으스스하게 비가 내린다. 雨中: 비 내리는 가운데. 無葉不鳴秋: 나뭇잎을 울리지 않음이 없다. 이중 부정은 강한 긍정임 // 十年: 십년. 獨下無聲淚: 홀로 소리없이 울다. 淚濕: 눈물이 젖는다. 袈衣: 가사, 스님이 입을 승복. 空自愁: 헛된 시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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