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견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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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견녀
  • 김정범 내북면노인회장
  • 승인 2017.09.07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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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나서니 독구가 꼬리를 치며 인사를 한다. 함께 나선 이른 아침, 초가을의 들길에 끈을 잡은 손이 아플 만큼 주인을 끌고 가는 놈의 걸음걸이가 광대라도 된 듯싶다.
개는 본능적으로 사람을 따르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성품 때문에 예로부터 생존 명맥을 사람들과 같이 해 왔다. 진돗개나 풍산개처럼 용맹하고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것들도 있지만 일명 똥개라 하는 우리나라의 토종들은 성품이 유순하고 주인을 잘 따르면서 집도 잘 지켜주기 때문에 살기 어렵던 옛 시절에도 집집마다 한두 마리는 기르고 있었는데 이는 가축이라기보다는 식구의 하나였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 이야기로 6.25 당시 우리 집에는 셰퍼드와 토종개가 있어서 셰퍼드는 이름을 핫지 라 했고 토종은 답부 라고 했는데 이는 언제나 주인이 나서면 발자국을 밟고 따라 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했다. 그런데 피난을 떠날 때 어찌 되었는지 답부는 남겨 두고 셰퍼드만 데려가게 되었는데 피난길 도중 미군을 만나 셰퍼드는 결국 그들에게 빼앗겨버렸고 후에 집에 돌아와 들은 이야기로는 우리가 피난을 떠난 며칠 후 한 마을에 사시던 큰아버지께서 우리 집엘 와보니 빈 집에서 며칠을 굶은 답부가 기진하여 있기에 큰댁으로 데리고 가서 우리가 돌아오기 까지 석 달을 데리고 있던 중 어느 날 답부가 하루 종일 보이지를 않아서 우리 집엘 와보니 빈 집 뜰에 앉아 있어 이상하게 여겼는데 다음 날도 그랬고 사흘 째날 저녁 무렵 우리가 돌아왔다는 것이다. 석 달이면 우리를 잊고 큰댁을 제 집으로 여겼을 만도 한데 주인이 돌아 올 것을 어찌 알았으며 그 때 답부가 주인을 반기는 모습은 마치 2002월드컵 당시 우리가 골을 넣을 때 열광하던 붉은 악마와 같았던 것으로 기억 된다. 그 후로 어머니께서는 답부에게 늘 미안해 하셨고 주인이 돌아오고 부터는 답부도 큰댁에는 한 번도 가지를 않아서 큰아버지께서는 답부를 보면 배은망덕 한 놈이라고 하시곤 하였다.
그래서 그 후로 우리 집 개는 어느 놈이든 이름이 답부가 되었는데 내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난 후로는 개 이름이 독구로 바뀌었다. 그 이유는 아내가 시집오기 전 친정에서 기르던 개 이름이 독구였기 때문에 독구라고 불러서 인데 처음에는 답부 이야기를 해주면서 우리 집 개는 족보가 어떻든 이름은 답부라고 했어도 아내는 아내대로 친정에서 부르던 독구가 더 좋다며 밥을 주는 안주인이 그리 부르니 어쩔 수 없이 독구가 되었다.
우리 집에서 살게 되는 개는 어느 놈이든 제 명대로는 사는데 십여 년 전부터 기르던 놈이 죽은 후 마침 개가 없었는데 집을 옮길 무렵 누가 강아지를 한 마리 주어 그 놈이 지금은 혈기 왕성한 중년이 되어서 앞마당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 놈이 지금 말 하는 그 독구다. 옛 날 시골에서는 개를 묶어놓는 법 없이 놓아길렀는데 지금은 그럴 수 없어 사슬에 묶여 있어야만 해도 이 놈 역시 어찌나 주인을 따르는지 주인 만 보면 타고 오르려고 하여 성가실 때도 있고 또 비나 눈이 와서 마당이 질을 때에는 옷을 버리게 해서 미울 때도 한두 번이 아니지 만 그래도 제 딴에는 주인이 좋아서 하는 짓이니 미워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 편 멀리 지나가는 사람 만 봐도 짖어대는 놈이 한 밤에도 내 발소리나 자동차 소리는 용케 알고 반기는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지난 일요일 아침에는 독구가 짖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청주에 있는 딸애가 오는 것을 보고 반기는 소리다. 딸이 현관을 들어서면서 비닐봉지에서 통조림 같은 것을 꺼내는데 꼭 삼치 캔 같이 보여서 우리 딸이 반찬거리를 사오니 오늘은 잘 먹을 것 같다고 하면서 우리 딸 효녀라고 했더니 아빠 착각하지 마셔요, 이건 독구가 먹을 개 먹이예요 하면서 다시 들고 나가려 하기에 나는 우리 딸이 효녀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효녀가 아니라 효견녀로구나 라고 했더니 딸애가 막 웃으면서 나간다. 옆에 있던 손자 놈이 할아버지 효견녀가 뭐예요? 하고 묻기에 할아버지에게 효도 하지 않고 개한테 효도하는 네 고모라고 했더니 우리 아부지가 그러실 것 같아서 과일하고 간식거리를 사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들고 들어온다. 그러자 아내는 아내대로 남는 음식만 먹여도 되는데 돈도 썩었지 별걸 다 사다 개한테 먹인다고 핀잔을 하니까 개도 가끔은 별미를 먹어야지요, 라고 하기에 개 별미라는 것을 보니 햄처럼 고기를 다진 것인데 사람이 먹어도 될 만큼 하여 이만 하면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도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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