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7】
우리나라는 사계절의 차이가 뚜렷하다. 봄가을은 그지없이 시원하여 활동하기에 편하지만 여름과 겨울은 그와는 정반대다. 여름엔 심한 더워가 사람의 게으름을 더해주고, 겨울엔 꽁꽁 언 추위가 맹위를 자랑이나 하는 듯이 사람 활동을 제약한다. 한 숨이 헉헉 막힐 듯이 찌는 어느 여름 더워였던 모양이다. 자리를 깔고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하며 더위와 싸우면서도 켜켜이 얼어 있는 얼음을 생각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맨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뿐
집안에 파리모기 들끓어 가슴 근심 가득쿠나.
或坐상점時궤빙 赤脚惟思踏層氷
혹좌상점시궤빙 적각유사답층빙
況復堂宇鬧蚊蠅 中心鬱鬱愁如繩
황복당우료문승 중심울울수여승
맨 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뿐(苦熱行)로 제목을 붙여보는 칠언절구다. 작자는 아정(雅亭) 이덕무(李德懋:1741~1793)로 조선 후기 실학자다. 서자로 태어나 정규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으나, 총명하여 가학(家學)으로 문리를 터득했다. 약관의 나이에 박제가·유득공·이서구와 함께 [건연집:巾衍集]이란 시집을 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자리 깔고 앉았다가 때론 안석 기대니 / 맨 다리로 층층 얼음 밟고 싶은 생각 뿐 // 하물며 집안에는 파리 모기 들끓어 / 가슴 속 답답하여 근심만 가득하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푹푹 찌는 이 더위에]로 번역된다. 실학자의 한 사람도 실질적인 더위를 참아내기엔 매우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이런 시문을 썼을까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숨이 헉헉 막히는 여름을 경험한 보통 사람의 느낌 또한 그러했을 것이니…
더위를 참지 못한 시인의 몸부림이 눈에 선히 보인다. 자리를 깔고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하는 모습에는 당시의 상황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눕는 것도 지겨웠던지 안석에 기다란 몸을 기대어 보는 상황까지도 아낌없이 연출한다. 이렇게 더울 때는 추운 겨울이 생각난다. 양발을 벗는 맨 다리로 층층이 겹친 얼음을 밟고 싶은 강한 충동이 생긴다.
그러면서 화자의 눈에 보이는 것은 파리와 모기떼의 극성스러운 모습니다. 얼굴을 핥기는가 하면 살갗이라고 생긴 곳은 성한 곳 없이 문다. 가슴 답답할 수 밖에 없었겠다. 더위가 못살게 굴더니만 극성스런 파리와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며 괴롭히니 말이다.
【한자와 어구】
或: 혹은, 坐상점時: 자리 깔고 앉다. 궤빙: 안석을 기대다. 赤脚: 발벗은 다리, 惟: 오직, 思踏: 밟으려고 생각하다. 層氷: 층층이 언 얼음 // 況復: 하물며 다시, 堂宇: 집안에, 鬧蚊蠅: 파리 모기 들끓다, 中心: 가슴 속, 鬱鬱: 답답하여, 愁如繩: 근심이 노끈처럼 얽혔다. 근심만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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