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2] : 除夜有感 / 소파 오효원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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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2] : 除夜有感 / 소파 오효원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7.07.13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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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5】
섣달 그믐날밤이면 폭죽소리 요란하다. 맹위를 떨친 추위에 두꺼운 옷을 차려있고 마냥 좋아 날뛰는 녀석들이 제야를 보내는 놀이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새 옷을 보기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 추위가 등잔불 앞에 몸을 숨기는가 했더니만 매화나무 가지에도 봄이 엉금엉금 움직인다. 한 해가 지나면 또 한 해가 앞을 가로막으니 칠푼은 번뇌요 세 푼은 근심걱정 때문에 허리둘레 한 움큼 줄겠다고 읊었던 율시 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매화나무 스며든 봄 밤 따라 움직이고
차(茶) 주변엔 어릴적 꿈 연기따라 사라지네
번뇌와 근심걱정에 허리 줄어 든 내일 아침.
梅下沁春隨夜動 茶邊小夢伴煙飛
매하심춘수야동 차변소몽반연비
七分懊惱三分恙 明旦腰應減一圍
칠분오뇌삼분양 명단요응감일위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除夜有感)로 번역되는 율(律)의 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소파(小坡) 오효원(吳孝媛:1889∼?)으로 개화기의 여류문인이며 외교가로도 활동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매화나무 아래 스며드는 봄은 밤을 따라 움직이고 / 차 한 잔 주변에는 어릴 적 꿈 연기 따라 사라지네 // 그러함에도 칠 푼은 번뇌요, 세 푼은 근심 걱정일 것이니 / 내일 아침에는 허리둘레가 한 움큼쯤은 줄어들겠네]라는 시상이다.
전구에서 시인이 읊은 시심은 [밤도 이슥한지 오래건만 폭죽소리 드높고 / 새 옷 다리는 언니를 연이어 부르고 있네 // 눈 온 뒤로 봄 아직도 먼 줄 알았더니 / 추위가 등불 앞에 몸을 숨기는구나]라고 쏟아내면서 섣달 그믐날이 되면 추위는 벌써 등불 앞에 몸을 숨겼다는 감상력을 보인다. 매월당을 5세신동이라고 했듯이, 소파는 9세 신동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여자답지 않게 범상한 모습을 보였다. 노는 것도 여자아이들하고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놀았다.
시인이 관찰하며 느낀 시적 감상력은 본 후구에서 그 농도는 더하고 있다. 매화나무는 봄을 따라 밤에 움직이고, 차 한 잔 주변엔 어릴 적 꿈이 사라지고 있다고 했는 상상력이 그것이다.
화자는 해가 가면 갈 수록 번뇌는 칠푼이요, 근심과 걱정은 세 푼이라고 하면서 이 때문에 내일 새해가 되면 허리 둘레가 한 움큼쯤은 줄어 들것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근심과 걱정를 끼고 사는 우리네 인생사를 그래로 반영하는 시적 묘미를 발휘하는 멋을 부리고 있다.
【한자와 어구】
梅下: 매화나무 아래. 沁春: 스며드는 봄. 隨夜動: 밤을 따라 움직이다. 茶邊: 차 한 잔 주변엔. 小夢伴; 어릴 적 꿈 친구. 煙飛: 연기 따라 날아가다. // 七分: 칠푼(70%). 懊惱: 번뇌. 三分: 삼 푼(30%). 恙: 근심거리. 明旦: 내일 아침. 腰應: 허리는 응당. 減一圍: 한 둘레가 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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