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부랑 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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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길에서
  • 이영란
  • 승인 2017.06.29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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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곳, 학교를 다녔던 곳, 직장 생활을 시작 한 곳은 오래 기억이 되고, 문득문득 생각이 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안식처다. 나라가 발전하고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알뜰히 모은 여유 자금으로 여행을 하면서 힐링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어느새 나의 생활도 뒤 돌아 보고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는 60대가 되었다. 내가 걸어온 삶의 자취는 어떠하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꼬부랑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꼬부랑 할머니’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린 시절은 꼬부랑이라는 단어에서 여유를 느끼기 보다는 단지 허리 굽은 할머니만을 생각하며 부른 노래였다.
몇 년 전부터 꼬부랑길을 조성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여중 동창 세 명이 말티고개 정상에서 시작되는 꼬부랑길을 걷게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속리산으로 소풍 갈 때는 성능이 좋지 않은 차가 말티고개를 넘지 못하여 사람들은 장재 저수지 밑에 내려놓고 기사님과 조수님 두 분만 승차하여 말티고개 정상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까마득한 이야기가 생각났다. 장재저수지에서 정상까지는 꼬부랑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중간 길로 개미가 기어오르듯이, 시합을 하듯이, 반 친구들과 웃으면 올라 간 말티고개가 이제는 건강과 힐링이라는 단어 밑에서 여유를 갖고 걷을 수 있도록 길도 좋아지고 사람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서울로 잠입하여 대통령 관저 폭파와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시설을 폭파하라는 임무를 갖고 북악스카이웨이를 타고 왔을 때, 난 엄마와 함께 작은 오빠의 대학 입시 합격을 위하여 속리산의 작은 암자에서 새벽 기도 드리고, 보은까지 버스가 없어 하루 종일 걸어서 왔던 그 길이 이렇게 좋아졌으니 감사한 마음이다.
꼬부랑길을 걷다 보니 불교에서 말하는 108번뇌의 핵심단어가 보인다. 화강암에 쓰여진 그 단어들은 우리들의 생활을 해방 시켜 줄 그런 단어들이다. 질투, 탐욕, 고집 등은 빨리 먼 곳으로 여행 보내 배려, 사랑, 통합의 보따리로 싸야 할 번뇌들이다. 한번 쯤 두드려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해 주는 목탁도 꼬부랑길의 명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0여년 동안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생활한 내가 이제 울타리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야 할 시기가 왔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엔돌핀이 솟을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꼬부랑길에서 답을 찾을 것 같다. 어쩌면 꼬부랑길이기에 빨리 갈수 없어 정상이나 목표 지점에는 늦게 도달하겠지만 여유를 갖고, 옆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서 가는 길이 행복 할 것 같다. 사람이 생활하다 보면 나만을 생각하고 옆 사람을 생각하지 못하는 직선 길을 택하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잘하지만 다른 사람도 잘 할 수 있도록 손잡고 가야겠다. 손잡을 상대가 남편, 자식, 손주 일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한 걸음 더 떨어진 친구와 이웃에 웃음을 줘야겠다. 그리고 삶에 바쁜 자식에게도 ‘너만 잘 하려 하지 말고 남도 잘 하게 도우라’는 부탁을 해야겠다. 함께 살아가는 공간은 꼬부랑길을 걷는 것과 같다. 속도를 맞추고 이야기를 하면서 배려라는 봇짐을 같이 메고 갈 수 있는 사회가 정말 다음 자식들이 살아 갈 사회라는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겠다. 은혜를 갚아주라는 보은의 지명처럼...... 꼬부랑길이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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