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 궁녀의 넋인 양 피어 있구나 : 洛花巖 / 석벽 홍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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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 궁녀의 넋인 양 피어 있구나 : 洛花巖 / 석벽 홍춘경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7.06.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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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133】
역사가 살아 숨 쉬는 현장을 찾으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찬란했던 역사 보다는 어둡고 고통스런 역사가 그 때를 말해준다. 어느 왕조 어느 시대나 흥망성쇠는 필연코 있었던 법. 아니라고 숨길 수도 없다. 오늘의 우리도 돌아보며 그 때의 숨결을 듣는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고개를 휘저어 돌아보기도 한다. 부여를 찾아 시문을 남겼던 작품이 더러 있지만 삼천궁녀의 숨결을 꽃으로 비유하며 다르게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나라는 망했었고 산천도 변했지만
저 강 위 떠 있는 달 오늘도 변함없네
낙화암 바위틈에 핀 꽃 삼천 궁녀 넋이던가.
國破山河異昔時 獨留江月幾盈虧
국파산하이석시 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 風雨當年不盡吹
낙화암반화유재 풍우당년불진취

삼천 궁녀의 넋인 양 피어 있구나(落花巖)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석벽(石壁) 홍춘경(洪春卿:1497∼1548)으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식년문과에 을과와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예조참의에 올랐다. 1541년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좌승지?한성부우윤?이조참의를 지냈고 중종의 지문을 짓기도 하였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나라는 망했고 산천도 변하였지만 / 저 강 위에 떠 있는 달은 변함이 없네 // 낙화암의 바위 틈엔 아직도 꽃이 피고 / 바람과 비는 지금도 불기를 다하지 않는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낙화암을 다녀와서]로 번역된다. 석벽은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에 굽히지 않았고, 또한 권세가의 집을 찾은 일도 없었다 한다. 낙화암은 백제의 마지막 서울이었던 부여 부소산에 있는 큰 바위다. 백제가 망할 때 삼천궁녀가 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죽었기 때문에 이 바위를 낙화암(洛花巖)이라 했다.
시적 화자는 부여를 찾아 백제의 멸망을 떠 올린다. 그렇지만 강 위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달이 떠오른다. 낙화암의 틈새엔 아직도 꽃이 있음으로 시상을 떠올린다. 이 꽃은 현재 피어있는 꽃이 아니다. 떨어진 꽃다운 삼천 궁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며 지금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화자의 상상에 의한 꽃이다.
이런 착상에서 시인의 신선한 문학적 상상력을 만난다. 과거와 현재(시인 낙화암을 찾았던 당시의 현재)의 모든 것을 한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드리운 달을 보며 망해버린 옛 백제를 회고하는 한 시인의 고뇌에 찬 회상의 나래를 만나게 된다.
【한자와 어구】
國破: 나라가 망하다. 山河: 산천. 異昔時: 엣적과 다르다. 獨: 홀로. 留江月: 강위에 떠있는 달. 幾盈虧: 몇 번이나 이지러지고 찼다. 곧 변함이 없다. // 落花巖: 낙화암 가에. 부여에 있음. 花猶在: 꽃은 아직도 있다. 風雨: 바람과 비. 當年: 금년에. 不盡吹: 다 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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