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재와 행궁터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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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재와 행궁터 마을
  • 이장열 (사)한국전통문화진흥원 이사장
  • 승인 2017.06.15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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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의 말티고개 입구 저수지 아랫동네에 이르면 큰 자연석에 “대궐터”라고 쓴 표시물이 세워져 눈길을 끈다. “아, 여기에 대궐이 있었구나!”하고 감복하는 사람도 있고, “대궐은 무슨?”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대궐(大闕)이란 “큰 궁궐(宮闕)”이라고 할 수 있다. 본래 “궁(宮)”, “궁궐(宮闕)”, “왕궁(王宮)” “궐(闕)” 등은 모두 같은 의미의 말이다. 조선왕조 시대에는 매사가 왕 한사람을 위한 체제였기 때문에 “궁(宮)”이라는 말은 널리 아무데나(?) 사용이 되었다. 임금되기 전에 살던 집을 “세자궁(동궁)”, 빈(嬪)이나 세자빈의 처소를 빈궁(嬪宮)이라고 했다. 또 임금이 지방 나들이 갈 때 머문 장소(지금으로 치면 별장과 같은 곳)도 “행궁(行宮)”이라하였고, 하물며 죽은 임금을 모신 사당에도 '궁'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현재 “대궐터”라고 세워져 있는 곳은 실은 “행궁터”라야 맞는 말이다. 물론 현재의 장재리(壯才里)란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바뀐 엉뚱한 명칭이다. 어떻게 하여 그런 이름으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바른 역사를 나타내는 이름은 아니다.
왕의 거둥(擧動)은 모두 실록에 기록되는 법인데 조선왕조실록을 뒤져보니 세조가 보은에 한번 행차한 기록이 나왔다. 즉, 세조 10년(1427) 2월 18일(辛亥)날에 “임금이 속리사(俗離寺)에 행행(行幸)하고, 또 복천사(福泉寺)에 행행하여, 복천사에 쌀 3백 석, 노비(奴婢) 30구(口), 전지(田地) 2백 결(結)을, 속리사에 쌀·콩 아울러 30석을 하사하고 신시(申時)에 행궁(行宮)으로 돌아왔다.”라는 기록뿐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가 정확하게 어느 곳인지, 그리고 그 모양과 규모가 어땠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복원(?)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닐 테니까 동네 이름을 “행궁리”로 바꾸는 것은 좋을 것 같다.
우리나라 산세를 보면 백두대간이 서남으로 내려와 교하의 오두산에서 꼬리를 감춘다. 그 한북정맥을 뒤로 하고 남으로 계속 내려오던 백두대간은 소백산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달리다가 속리산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본줄기는 계속 지리산으로 내빼고 서북방향으로 한 갈래를 내어 한남정맥을 이룬다. 속리산이 있는 보은은 백두대간이 한남금북정맥과 분기를 이루는 자리에 있다. 보은은 작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결코 다른 지역에 뒤지지 않는 명소와 명품 등 자랑거리가 많이 있다. 신라가 사방에 기상을 떨치던 진흥왕 때 창건한 불교의 성역 ‘법주사’, 그 모양과 기품이 우아한 천연기념물(제 103호) ‘정이품송’, 현존 국내 유일의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명품 보은대추, 그리고 국내 유일의 국가제례 소사의 의례에 의해 거행되는 “보은조신제” 등이 그것이다. 지금 보은은 역사의 현장을 발굴하고 복원하며 새로운 역사창조를 위한 일대 역사에 들떠 있다. 일제가 끊어버린 한남금북정맥의 맥을 잇고, 굽이마다 자신의 삶을 사색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말티재를 단장한다. 그리고 정상에는 휴양시설로 건물 24동 55실에 하루에 동시에 350명의 숙박객을 수용할 수 있는 한옥집, 통나무집, 황토집, 너와집 등 친환경 숙박시설 조성 등 많은 사업이 벌어지고 있다.
필자는 요 얼마 전에 말티재 정상에 올라서 주변을 둘러본 바 있었다. 저 멀리 백두대간과 한남정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경관에다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확 트이는 듯 했다. 신라 진흥왕이 삼국통일의 큰 뜻을 품고 창건한 법주사가 바로 저 멀리 보였다. 그때 진흥왕의 거대한 기상을 한마디 큰 외침으로 체험하고자 높이 소리 질러보았다. 나의 외침은 빼어난 경치의 둘레길 10㎞로 메아리쳐 퍼져나갔다.
현재 재정자립도 10% 밖에 안되는 작은 군세에도 불구하고 한 몸 아끼지 않고 동분서주하는 삿도영감의 정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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