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인지요 : 待郎君 / 능운 (여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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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인지요 : 待郎君 / 능운 (여류시인)
  • 장희구 (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승인 2017.05.04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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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 130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자는 약속은 생산성은 없다. 생산성이 없는 약속이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그 약속이 독수공방을 지키면서 바람만 불어도 임이 아니신가 기다리던 약속이었다면 더 말할 나위 없겠다. 여인의 기다림은 오직 은근과 끈기로 가슴 조이는 기다림에 있다. 달이 뜨면 오마시던 임이 오시지 않아 기다리다가 아마도 그곳엔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이라고 합리화 해버리며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그대는 달이 뜨면 오마고 약속터니
달이 떠도 낭군은 오시지 않으시네
산 높아 달이 더디떴나요. 임 계시는 그곳엔.
郎云月出來 月出郎不來
낭운월출래 월출낭불래
想應君在處 山高月上遲
상응군재처 산고월상지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인지요[待郞君]로 번역해 본 오언절구다. 작자는 능운(凌雲:?∼?)으로 조선 후기의 기생이자 여류시인으로만 알려질 뿐 다른 기록은 없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낭군이 말하기를 달이 뜨면 오마고 했는데 / 달이 떠도 낭군은 오시자 않는군요 / 생각건대 응당 그대 계신 곳은 / 산이 높아 달이 더디 뜬 것인지요]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낭군을 기다리며]며 번역되며, 다음 의역도 가능하다. 맛깔 나는 시의 운치를 맛본다. [임 가실 제 달 뜨면 오마시더니 / 달은 떠도 그 임은 왜 안 오실까 /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임 계신 그곳엔 // 산이 높아 뜨는 달이 늦은가 보지] 운치가 더한 느낌이 든다. 흔히 凌雲之志(능운지지)라는 말을 쓴다. 높은 구름을 훨씬 넘는 뜻으로 속세에 초연한 태도나 초탈하려는 마음과 연결 시켜보는 것은 무리는 아닐지 모르겠다. √시인은 낭군과 깊은 약속을 했던 모양이다. 달이 뜨면 오겠다는 약속이다. 그런데 달이 떠도 오시지 않는 낭군을 기다리고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낭군이 계신 곳이 아마도 산이 높아 달이 더니 뜬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는 시인의 긍정적인 판단을 해보는 상상력을 만난다. √화자는 그 약속을 믿고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는데서 이 시문의 묘미를 찾게 된다. 재회의 기약은 순조롭게 지켜지지 않는다. 더구나 달뜨면 오겠다는 약속은 허망하기만 하다. 달이 떠올랐건만 임은 오지 않고, 기다리는 심정은 안타깝기만 하다. 이 안타까움을 ‘임 계신 곳의 산 높아 뜨는 달이 늦다’ 라고 달랜다. 임 그리는 마음이 이리도 한량없는 것이리라.
【한자와 어구】
郎云: 낭군이 말하다. 月出: 달이 뜨다. 來: 오다. 곧 오시겠다. 郎: 낭군. 不來: 오지 않는다. // 想: 생각건대. 應: 응당. 君在處: 그대 있는 곳. 그대 있는 곳으로부터. 山高: 산이 높아서. 月上: 달이 뜨다. 遲: 더디게 뜨다. 느리게 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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