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벚꽃 산책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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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벚꽃 산책길에서
  • 시인 김종례
  • 승인 2016.04.21 14: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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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약동하는 소리에 깨어나 물이 흐르던 계곡과 새싹이 움트던 정원에도 어느새 오만가지 꽃들이 피어나 흔들거린다. 꽃나무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봐 달라고 손짓을 한다. 겨우내 제자리를 지켜내느라 힘겹게 씨름을 했노라고 저마다 몸을 열어 제치고 웃는다.
사월이 시작되던 어느 날, 나는 퇴근길에 아기벚꽃 나무들이 손짓을 해대는 긴 산책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랜만에 만개한 벚나무 아래 서니 도피안의 세상이 여기가 아닌가! 공지혜의 가벼움을 느껴보기에 부족함이 없는 혼자만의 여유로움에 젖어들었다. 분주한 시간 싸움 속에 반복되는 일상들이 나의 시야를 가리우고, 나의 발에 족쇄를 채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아빛 꽃잎의 연한 숨결을 오늘서야 폐부 깊숙이 마시며, 마음의 비타민이 충만히 넘쳐나는 그 길을 심호흡을 하며 걸었다. 부끄러운 속살을 들켜버린 갓 시집 온 내숭의 신부마냥, 연옥의 부유가 권태로워 문을 박차고 이승에 마실 온 철없는 공주마냥, 그다지도 앙증맞고 귀요미 꽃잎들이 하염없이 내 영혼을 흔들어대던 순간이었다. 산책길 아래 흐르는 수면위로 꽃가지들이 닿을 듯 말 듯 휘늘어진 모습은 천국의 풍경을 상상하게 하였다. 머지않아 봄비라도 뿌리고 나면 허공에 흐드러질 잠시의 춘몽에, 꽃비로 화답하며 하늘로 돌아가야 할 짧은 운명에 우리의 인생이 반영되는 애잔한 순간이었다. 젊은 연인들이 호롱불 같은 꽃잎들을 손바닥에 간질이며, 서로 머리에 꽃핀을 꽂아주며 가슴에 묻어둔 소원을 비는 눈빛으로 내 곁을 스쳐간다. 나도 마음의 문을 열고 아지못할 웃음으로 화답하며 초면수작도 걸어본다. 노화해 가는 내 영혼에도 꽃잎과 나무와 바람과 하늘, 그리고 이 우주와 교류하고 있다는 신비로움에 젖어 들었다. 겨우내 쌓였던 일상의 노폐물들이 빠져나가며, 구름을 박차고 나온 석양빛이 나의 미궁 속을 은혜의 광선처럼 쏘아대었다. 나처럼 혼자 걷는 사람보다 함께 걷는 이들이 아름다워 보이던 아기벚꽃 산책길이다. 추워도 눈 내려도 언제나 따스한 사월의 숨결이 숨어 있는 아기벚꽃 산책길이다.
나는 산책길을 빠져 나오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냥 가던 길을 잠시 파크하고 샛길로 발걸음을 옮겼더니, 이렇게 신선한 일상의 돌파구가 기다려 주고 있는데도...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시간의 밧줄에 꽁꽁 얽혀서는 습관의 노예가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열림의 문 안으로 한걸음 들어가면 깨달음의 기류가 교류한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은 채, 내면의 탈피를 시도해 볼 겨를도 갖지 못한 채, 날마다 분주한 일상 속에 스스로 잠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문도 마찬가지다. 열리면 깨달음이 있고 소통이 있고 치유와 회복이 있다. 열지 않기 때문에 소망의 광선이 마음밭으로 들어 올 수가 없다. 용기를 내어 마음의 문을 열어 제치면 만물이 통하고 마음의 벽을 허물면 모든 사람이 통하고 육체의 병까지도 치유됨을 감지하게 된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면 모두가 머나 먼 혜성의 타인이 된다. 심지어 가족 간에도 그 두꺼운 문을 꽝 닫아 버리면 도저히 그 속을 헤아릴 수가 없다. 요즈음 어디나 누구나 외쳐대며 이슈가 되고 있는 소통이 쉽지가 않다. 진정한 소통이란 내 마음을 먼저 상대방에게 열어 보여야 성립이 된다. 그 두꺼운 문과 벽안에 갇혀있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지혜가 먼저 필요하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문을 박차고 나가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내가 먼저 변해야 가족이 변하고 이웃이 변하고 우리 사회가 변하게 되는, 그 쉬운 진리조차 우리는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성경에 <남의 눈에 티끌을 빼 주려면 내 눈 속에 있는 대들보를 먼저 치워야 그 티끌이 보일 것이다>는 말씀이나, 소크라테스의 <네 자신을 알라> 고 한 참 진리를 어쩌면 까맣게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내 문이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를 점검하기 전에 상대방에게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으려고 했던 내 자신을 돌아보던 산책길이었다. 오랫동안 상대 정당만을 비방해 오며 티격태격 시끄럽던 20대 총선이 수많은 과제를 남기고 막을 내렸다. 찢어진 현수막과 벽보가 함께 가야할 운명이라고 질타하듯이 봄바람에 흐느적거리며 웃고 있다. 나도 이 봄이 가기 전에 만나는 사람마다 바보같은 웃음을 건네주고 싶다. 해마다 4월이면 그다지도 조화로움의 꽃을 피워내는 순하디 순한 꽃잎들처럼....
아기벚꽃 산책길에서의 단상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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