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60】
백제가 신라에 의해서 망하고, 신라가 고구려를 흡수하는 것을 삼국통일이라고 했다. 그런 역사가 백제 말에 애환을 담고 있다. 계백의 강인함도 황산벌의 먼지도 쓸어져 가는 국운 앞에서는 초라한 먼지에 불과했던 것, 백제는 그렇게 망했다. 그러나 그 흔적만큼은 부여에 남아 있으니 백마대 낙화암보는 순간 숱한 세월이 흘렀겠지만 청산의 함묵으로 인하여 그 때의 역사를 알지 못한다는 역설적으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백마대 빈자리가 몇 해나 지났는가
낙화암은 선채로 숱한 세월 지났으나
청산이 함묵치 않았다면 천고흥망 알려줄걸.
白馬臺空經幾歲 落花巖立過多時
백마대공경기세 락화암립과다시
靑山若不曾緘묵 千古興亡問可知
청산약불증함묵 천고흥망문가지
천고의 흥망을 물을 수 있으련만(夫餘懷古)으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자는 어우동(於于同:~1480)으로 조선 성종시대 사람으로 집안이 부유했고 자색도 뛰어났다. 종친 태강수(泰江守) 이동(李仝)과 혼인할 때도 그녀 앞길은 순탄했다. 그러나 그는 강요된 행복을 거부하고 여자로서의 해방된 삶을 꿈꾸면서 다른 인생길로 접어들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백마대 빈 지 몇 해가 지났는가, 낙화암은 선채로 많은 세월 지났네. 청산이 일찍이 함묵하지 않았다면, 천고의 흥망을 물어서 알 수 있으련만]이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부여를 회고함]으로 번역된다.
훗날의 사서(史書)에서는 그녀를 구제불능의 음부, 인륜을 저버린 반사회적 일탈자로 규정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윤리보다는 인간으로서의 자유였다는 평가도 잊지 않는다. 결혼 후 그녀의 첫 상대가 천한 신분의 은장(銀匠)이였던 점부터가 어우동의 삶이 지닌 혁명성을 예고한다.
친정으로 쫓겨난 시인은 곧 여종과 같이 길가 집을 구해 독립했다.
조선시대판 커밍아웃(coming out)이었던 샘이다. 시문에 능했던 그녀는 백제의 역사를 회고하는데 낙화암을 선채로 많은 세월이 지났음으로 시상을 일으킨다. 시인의 기발한 시상을 하나를 만난다. 청산을 왜 그대로 함묵(緘?)하고 있는가에서 보인다.
화자는 청산이 일찍이 말없이 가만히 있지 않았더라면 천고의 흥망성쇠를 낱낱이 물어 대답을 들을 수도 있지 않았겠는가 하는 점이다. 낙화암을 찾는 시인에게 한마디 못하고 묵묵히 서있는 암자를 보면서 탄식하는 안타까움을 엿본다.
【한자와 어구】
白馬臺: 백마대. 空: 비어있다. 經幾歲: 몇 년이 되었던가. [幾]자 때문에 반추형 의문문임. 落花巖: 낙화암. 立: 서다. 서있다. 過多時: 많은 시간이 지났다.
靑山: 청산. 若: 만약. 不曾緘묵: 일찍이 함묵하지 않았다. 千古興亡: 천고의 흥망. 問: 묻다. 可知: 가히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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