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 : 燕巖憶先兄 / 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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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 : 燕巖憶先兄 / 연암 박지원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4.12.0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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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24】
울컥 치미는 충동 속에 부모님을 뵙고 싶어진다. 살아 계실 때 다 하지 못한 효도라고 생각된다면 돌아가신 후에는 더욱 사무쳐 보고 싶은 생각이 생길 것이다. 아버님 얼굴을 꼭 빼닮은 형이나 아우가 있다면 얼굴을 뵐 때 마다 살아 계신 부모님과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형님을 마치 부모처럼 생각하며 살았던 형님에서랴. 부모님 꼭 빼닮은 형님이 돌아가시자 보고 싶어 몸부림치는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燕巖憶先兄(연암억선형) / 연암 박지원
우리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선친이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냇물 속 두건 쓴 내 얼굴, 보고픔을 달래야지.
我兄顔髮曾誰似 每憶先君看我兄
아형안발증수사 매억선군간아형
今日思兄何處見 自將巾袂映溪行
금일사형하처견 자장건몌영계행

황해도 금천의 연암협(燕巖峽)에서 돌아가신 형님을 생각하며(燕巖憶先兄) 쓴 칠언절구다. 작자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조선후기 실학자 겸 한문소설가다.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하여 청나라 문화를 소개하고 당시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각 방면에 비판과 개혁을 논했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우리 형님 얼굴 수염 누구를 닮았던고 /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나면 우리 형님 쳐다봤지 /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에서 볼 것인가 / 두건 쓰고 옷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내 얼굴 보아야겠네]라는 시상이다.
닮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어느 한 구석엔가 닮은 데가 있어 보인 것이 형제다. 하물며 부모님에서랴. 살아생전에 극진하게 효도하지 못했던 자식이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더욱 그랬다. ‘부모공경 형제우애(父母恭敬,兄弟友愛)’라는 동양적인 효 관념사상이 우리의 피 속에 맥맥하게 흐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암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시인은 선친(先君)을 꼭 빼닮은 형님 얼굴을 보면서 부모님을 뵙고 앉아 있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사랑하던 형님마저 돌아가시고 세상에 계시지 않으니 다정다감했던 그 모습을 어디에서 뵈올 것인가 한탄하는 시상을 일으킨다. 다른 말이 더 필요 없겠다. 도도한 맥박 속에 효도와 우애 정신이 맥맥하게 흐른다.
화자에겐 대리만족하는 단 한 가지, 형님처럼 의관을 정제하고 냇가에 나가 냇물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면서 부모님 뵙듯이, 형님 뵙듯이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자기 위안을 달래면서 시상을 전개함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한자와 어구】
我兄: 나의 형님. 顔: 얼굴. 髮: 수염. 曾: 일찍이. 誰: 누구. 似: 유사하다. 每: ∼마다. 憶: 생각하다. 先君: 남에게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를 이르는 말. 看: 바라보다.
今日: 이제. 思: 생각하다. 兄: 형. 何處: 어디. 見: 보다. 自: 스스로. 將: 장차. 巾: 두건. 袂: 소매. 映: 비치다. 溪: 시내. 行: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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