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 : 次韻許正言見寄 / 근제 안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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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 : 次韻許正言見寄 / 근제 안축
  • 장 희 구(시조시인 문학평론가 )
  • 승인 2014.07.0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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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향 머금은 번안시조(4)
고려말엽 몽고 제국에 들어서면서 원나라의 연호를 쓰는가 하면 다음 보위에 오를 원자가 원나라의 풍습을 따랐다. 그래서 임금의 칭호 앞에 [忠]자를 붙였다. 그 때 원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관에 진출한 사람이 많았다. 시인은 신흥 유학자로 새로운 제도와 풍습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저항도 만만했을 것이다. 이런 개혁적인 뜻을 갖고 충숙왕 복위 원년에 파직과 복위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그 심회를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次韻許正言見寄(차운허정언견기) / 근제 안축
북산이문 펴서 읽고 부끄럽게 여기었네
야박한 풍속인데 내 가르침 누가 따르랴
폐단이 난무한 세상에 구할 계책 없구나.
燈前優讀北山移 自愧歸休已太遲
등전우독북산이 자괴귀휴이태지
俗薄何人遵我敎 弊深無計救此時
속박하인준아교 폐심무계구차시

풍속이 야박하니 누가 내 가르침 따르리(次韻許正言見寄)로 제목을 붙여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이다. 위 한시문을 의역하면 [등불 앞에서 근심해 북산이문 책을 읽고 / 돌아와 쉬니 너무 늦었음을 부끄럽게 여긴다네 // 풍속이 야박해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리오 / 폐단 많은 세상인데 이 시절 구할 계책 하나 없구나]라고 번역된다.
위 시제는 [허정언의 견기에 차운함]으로 번역된다. 허정연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북산(北山)은 중국 남경 북쪽 산이고, 이문(移文)은 글의 문체를 말하는 것으로 오늘날의 포고문, 통고문과 비슷한 글이다. 북산이문은 공치규(孔稚圭:447~501)가 지었는데 고문진보에 전한다. 저자는 이 책을 읽은 후 풍속의 야박함을 꾸짖고 있음이 시적인 배경이 된다.
시인은 북산이문에 취했던 모양이다. 이 글에 푹 빠졌던 시인은 잠시 쉬면서 너무 늦게 깨닫는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면서 세상을 구할 계책을 생각해 본다. 고려말의 어수선한 세상에 혼탁할 대로 혼탁함에 비애를 느꼈던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화자는 풍속이 야박한데 누가 내 가르침을 따르겠는가라고 비관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얼마나 많은 폐단 속에 살았던가를 짐작하는 대문이기도 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을 구할 계책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화자의 몸부림을 시문 속에서 찾게 된다. 역설적인 모순이다.

작가는 근제(謹齋) 안축(安軸:1282~1348)으로 고려 후기 문신이다. 경기체가인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어 문명이 높았다. 흥녕군에 봉하여진 뒤 죽었다. 순흥의 소수서원에 제향되었고, 시호는 문정이고 저서로는 [근재집(謹齋集)]이 전한다.
【한자와 어구】
燈前: 등불 앞. 優: 근심하다. 讀: 읽다. 北山移: 북산이문 책. 自愧: 스스로 부끄럽게 여기다. 歸休: 돌아와 쉬다. 已太遲: 이미 너무 늦다.
俗薄: 풍속이 야박하다. 何人: 어느 누가. 遵: 따르다. 我敎: 나의 가르침. 弊深: 깊은 폐단. 無計救: 구할 계책이 없다. 此時: 이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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