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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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되지 않아야....
  • 김종례
  • 승인 2014.05.0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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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투며 피어나던 꽃잎들도 꽃비가 되어 흩어지고, 아기의 연하고 비릿한 살결처럼 부드러워진 잎새마다 바람이 앉아 숨을 돌린다. 어느덧 금방 물들인 연둣빛 치맛자락에 모란 한 송이 기지개켜며 피어날 듯, 만삭의 숲이 실핏줄까지 탱탱하게 차오를 가정의 달 오월이 가혹하게 달려온다. 꽃이 진 자리에 잎이 돋아나는 울타리를 한 바퀴 돌며 생각에 잠긴다. 침몰 후 기다림의 한주가 지나서야 여객선 소유주의 부조리와 비리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나고, 기본과 원칙을 위반한 황금의 횡포가 결론적으로 대두되었다. 귀 동양으로 들은 원인규명 단두대에 올라간 사항이 참 많다. 이상기후와 사전준비를 무시한 위반규정 출발, 생명보다 더 중한 다단계 결재, 장농속 매뉴얼 덫에 걸린 늦장구조, 안전가동 시스템과 구조기능 통합시스템 작동부진, 국민적 안전훈련 의식 불감증, 과정중심보다 결과중시적인 행정체제, 여기에다 불난 집에 부채질 한 보도경쟁의 혼란함, 뜬구름마냥 떠도는 유언비어의 횡포, 그리고 신문마다 재난의 원인을 비판하는 기고와 철지난 수학여행 관련 컬럼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언제나 비극적인 참사를 치루고 나서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지만, 이번에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중 하나는 역할수행 부재와 직업 윤리성이라 하겠다. 커다란 사건의 원인을 비집고 들어가면 의외로 작은 말 한마디, 작은 실천 하나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학교 울타리를 한바퀴 돌고 오니, 평소에는 질서정연하게 정렬되었던 외부주차장이 웬일인지 뒤죽박죽 혼란스럽다. 알아보니 지킴이 선생님의 연가일이란다. 노인일자리 복지서비스로 오시는 어르신이 청소 한번 거르는 주는 학교가 금방 먼지투성이가 되어 버리기도 한다. 어쩌다 한 사람 부재중인 날은 한 모퉁이 삐꺽대는 소리를 금방 감지하는 게 실타래 같은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던 모든 이들의 소중함과 고마움을 재발견하는 순간이 참 많다. 역할 수행이란 ‘스스로가 역할에 대해서 인식하고 실천하는 것이나, 주변의 역할 기대대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 적혀있다. 예를 들면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주길 바라는 부모의 역할기대에 순응해야 하며, 부모는 자녀들의 역할기대를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의무가 있다. 배우는 무대 위에서 관객의 기대에 만족감을 주어야 하며, 사병은 지휘관의 역할기대에 순종해야 한다. 한 조직의 리더는 조직원의 역할기대를 충족시켜야 하며, 정부는 국민의 역할기대에 부합되도록 앞으로 나가야 한다. 기장이나 선장역시 탑승객의 역할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함에도......그리하여 학생은 배움터에서 행복하고, 가장은 가정에서 가족과 함께 행복해야 하며, 배우는 무대 위에서 천상을 누려야 한다. 리더는 조직 안에서 다 함께 기뻐해야 하며, 선장 역시 바다를 바라보며 배 안에서...
몇 분 후에 나에게 닥쳐올 재앙이나 고난을 전혀 감지 할 수 없는 복잡하고 불안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기에 기본을 지키려는 한사람의 역할은 이 시대에 등불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 누구의 위치나 본분도 불필요하거나 소중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로의 역할수행이 역할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감당하기 힘든 사각지대만 생겨날 뿐이다. 어찌해서 무늬만 사람이냐고 울분을 터뜨린다고 해결 될 문제가 아니기에, 원래대로 되돌릴 수 없다면 그 상처를 덧나지 않도록 치료하는 길만이 최선책이 아닐까 싶다. 우리 모두가 자기의 달란트와 임무를 소중한 천직으로 여기며 역할수행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숨쉬기도 미안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유족들에게는 어떠한 위로의 말도 가슴을 만져주지 못 할 것이다. 이제는 서로 탓하기에 앞서 수많은 희생이 결코 헛되지 않게 함께 슬퍼하고 함께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꽃봉오리들을 대책도 없이 떠나보낸 참담하고도 잔인했던 사월도 어김없이 오월에게 의자를 비워줘야 하기 때문이다. 재가 된 가슴까지 보여 달라며 투정하던 뱃머리도 가라앉고, 통곡하는 모성을 가득 싣고 어디로 가려는지 바다는 연신 울먹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시간이 무작정 흐른다고 우리가 이 눈물의 바다를 또 잊을 수 있을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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