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인 허수아비
상태바
고개 숙인 허수아비
  • 김정범 내북면 노인회장
  • 승인 2013.10.17 08: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밭이라고는 백 여 평도 채 못 되는 텃밭이 전부이지만 그래도 거기 에다가 채소를 비롯해서 감자와 고구마 그리고 콩팥을 심으면 아이들에게도 조금 씩 나누어 주며 먹을 수 있기에 농사라고 하는 일이 쉽지 만은 않아도 재미를 함께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고된 농사일에 어쩔 수 없이 시달려야 만하는 농촌의 현실을 생각하면 속 편한 소리한다고 할런지는 몰라도 그래도 농사짓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만은 분명 한 것 같다. 봄에 감자나 강낭콩을 심으면 여름에 수확 할 수 있기 때문에 거기에다가 채소를 심으면 김장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이렇듯 평범한 농사의 이치와 땅의 고마움이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금년에는 아내가 어디서 기장 씨앗을 얻어가지고 와서는 심어 보자고 하여 조그만 밭에 어디 심을 데가 있겠느냐고 하였더니 그래도 조금 만 심어 보자고 하기에 포토에다가 모를 길러서 심었더니 그 간 제법 잘 자라 주었는데 가을이 되니 참새가 문제였다.
우리 집은 언제나 잡곡밥을 먹는다. 세시 풍습으로 정월 대 보름 날에는 오곡밥을 먹는다지만 오곡밥으로 따지자면 우리 집은 일 년 내내가 정월 대보름이다. 보리쌀을 비롯해서 조, 수수, 콩, 현미 등 잡곡을 커다란 함지박에다가 쌀과 함께 섞어 놓고는 그 것으로 밥을 지어 먹기 때문에 가끔 먹으면 별미일지 몰라도 매일 먹게 되니 부드러운 맛은 없어서 먹기가 좋은 것만은 아니라서 가끔은 흰 쌀밥을 해서 먹어보면 어떻겠느냐고 하면 아내는 건강을 위한 것이니 해서 주는 대로 먹으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당신이 5 백(白)은 멀리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면 할 말이 없게 된다. 언젠가 어느 분의 강의에서 쌀밥과 밀가루 그리고 소금과 설탕, 조미료 이 다섯 가지 흰 것은 멀리 하는 것이 좋다는 말을 듣고 는 아내에게 해준 말인데 그것을 잊지 않고 내게 되받으면 할 말이 없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잡곡을 많이 먹는 연유로 기장을 조금 심었고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 오늘 베었는데 쭉정이 뿐이다. 낟알이 여물기 시작 할 무렵부터 참새 떼에게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참새가 먹으면 얼마나 먹으랴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근래 몇 년 동안은 추수 때가 되어도 참새 떼가 보이지를 않아서 이러다가는 참새마저 없어지게 되는 것은 아닌 가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금년엔 참새 떼의 극성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몇 십 마리정도가 아니라 몇 백 마리 되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 기장은 무슨 별미라도 되는지 아침저녁 가릴 것 없이 온 종일 밭에서 사는데 아무리 쫒아도 소용이 없다. 훠이 훠이 소리를 질러도 목 만 아플 뿐이고 아내가 하도 속상해 하여 은색 테이프를 얼기설기 느려 보기도 하고 허수아비도 만들어 세워 놓았지만 소용이 없다. 처음에는 속는 듯 하다가도 얼마 후에는 위협에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아는지 아예 허수아비 머리에 앉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가을이 되면 허수아비가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연상케 하는 향수의 대상으로 그리움을 자아내기도 한다지만 이렇게 참새에게 까지 천대를 받아서야 허수아비 인들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아마도 주인에게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아내가 속상해 해도 어쩔 도리가 없기에 이제는 그만 마음이라도 편하게 체념을 하라고 하면서 참새도 하나님께서 기르시는 것이니 성서에 있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라고 하였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하나님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 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 나를 참새 기르는 일꾼으로 삼아 주셨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