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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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의 시간
  • 회남초교 교감 김종례
  • 승인 2013.10.0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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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이 지난지가 엊그제 같은데 다시 추석명절이 돌아왔다. 명절이 돌아와도 은근한 기대감 대신 걱정이 앞선 지도 꽤 오래전부터라고 해야 맞다. 그런데 올 추석은
황금의 연휴인지라 오래전 내려놓았던 기대감을 슬며시 도로 올려놓고, 추석을 맞은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나도 사위를 보고 첫번째 맞는 추석인지라 시장을 보며 뭘 해 먹여야 할까 걱정이 되는 명절이기도 하였다. 연휴 첫날, 저녁에 아들이 귀가하고 시동생들이 도착하면서 명절 분위기는 솔솔 피어나기 시작하였다. 시끌벅적 분대질을 놓던 시동생들 가족들과 하룻밤을 보내고 이튿날 차례차례 처갓집으로 떠날 때까지는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는 상황이 언제나 벌어진다. 뒷정리까지 하다보면 저녁 늦게서야 ‘아이구!’하면서 고꾸라지는 사태야말로 나의 명절의 모습이곤 하였다. 티브에서 손목터널증후군이니 명절 후 이혼율이 얼마 상승하였느니 떠들어대면 ‘어이구 별일 다 보겠네!’ 하면서도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면 저리도 야단일까도 싶다. 명절의 재정립 관념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올해는 장장 5일이라 좀 여유가 있었다고 할까? 연휴 셋째날, 딸과 사위가 양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들이닥쳤다. ‘무거운데 뭘 이리 많이 사와’하면서도 막상 펼쳐보면 선물재미는 언제나 솔솔하기 그지없다. 첫날에 아직은 미혼인 아들이 빈손으로 왔을 때 <너 명절인데 어찌 빈손으로 올수 있냐?> 하면서 장난삼아 눈도 흘겼지만, 아들의 명쾌하고 장황한 대답에 나는 한참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 명절에 선물을 들고 오는 것도 좋지만 그건 겉치레가 되기 쉽지 않나요? 전 명절을 보상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잘 몰랐는데, 해마다 치르는 명절에 무슨 깊은 의미가 있을지 곰곰 생각해 보았는데요. 오랜만에 모인 가족과 친척끼리 그동안에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사회에서 보상받지 못한 빈 구석을 서로서로 채워주는 아주 중요한 타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아들의 가슴에 마음의 선물이그득 들어 있으니 넘 서운하게 생각 마세요!> 라며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하여 한바탕 웃어넘겼다. (맞아. 조상님들이 맏며느리 훈련시키시는 게 명절이구? ㅎㅎ)<어머니도 음식에만 신경쓰지 마시고 귀가한 아들에게 보상의 선물 듬뿍 안겨 주실거지요?> 얼마나 직장생활 서울생활이 힘들면 저런 이야기를 할까 싶고 가슴이 찡하여 덩치 큰 아들을 오랜만에 꼭 안아보았다.
마음의 선물! 어디까지 선을 그어야 좋을까? 내가 중반교사 때만 해도 순수한 마음으로 오가는 선물들이 그래도 잔존하였다. 직접 따온 밤, 감, 대추 몇개를 들고 와서는 담임샘 손에 넌즈시 건네는 고사리 같은 손길이 있는가 하면, 송편 고물로 쓰라고 한 움큼씩 싸온 곡식과 엄마들의 덕담으로 추석 분위기가 정감나기도 하였었다. 관리자들은 직원들에게 양말이라도 하나씩 안겨주며 먼 귀향길에 잘 다녀오라 당부하기도 하였고, 친목회 일동으로 고기 두어근과 정종 한 병을 감사의 뜻으로 보답하는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이웃끼리는 가을 수확물을 나누며 고향에 온 인척들의 안부를 묻기도 하면서.... 추석은 둥두럿이 떠오르는 보름달처럼 그렇게 흥겹고 정겹고 넉넉해지는 명절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오가는 잔정들이 번거롭게 여겨지며 마음조차 덩달아 삭막해져 갔다. 정말 소소한 마음의 선물조차 말이다. 연휴 넷째날, 드디어 오랜만에 가족 나들이를 가까운 속리산으로 갔다. 애들은 어릴 적 뛰어놀던 넓은 잔듸밭을 지나며 아물거리는 기억속에 동심으로 돌아갔고, 고향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적요하게 댕그렁거리는 풍경소리를 들으며 여승암의 뒷뜰도 기웃거리고, 또는 갈대숲에 뒤덮인 계곡의 청량한 물에 손을 씻으며 에메랄드빛 하늘도 올려다보고, 솔향 그윽한 오리숲을 거닐며 코끝을 상하게 하는 소슬바람도 만끽하였다. 우리도 소나무 가지 사이로 석양이 타오를 때까지 은밀한 마음의 상처까지 두드리면서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연휴 마지막 날, 딸 내외와 아들이 상경하려고 짐꾸러미를 들고 부산하게 현관문을 나섰다. 언제나 그러하듯 헤어질 시간이면 내게 후회와 미안함과 안스러움만 고스란히 남는다. 애들을 차례대로 안아주면서 아들의 제안처럼 보상의 시간, 위로의 시간이 정말 되었을까? 스스로 궁금해 하면서, 가을들판 사이로 빠져나가는 차의 뒤꽁무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오래오래 손을 흔들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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