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이야기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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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 이야기를 마치며....
  • 김종례 (회남초등학교 교감)
  • 승인 2013.02.28 0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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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겨울이 가고 또 봄이 지나고 산천초목 무성하게 우거지며 우리 집 마당이 잡동사니 풀로 뒤덮이던 지난여름이다. 안드레가 우리 집에 온 지도 2년 4개월이 흘렀다. 마당의 허름한 화단에 온갖 일년생 화초들이 자지러지게 피어나고, 매미 소리 그윽하여 오수가 달콤하게 밀려오던 나른한 오후, 평상에 누워서 깜박 잠이 들었다. 스쳐가는 바람소리에 눈을 떴을 때, <어머, 제가 누구야! 안드레 아니야? 그런데 왜 저리 몸이 작아졌지?>우거진 백일홍과 분꽃 사이에서 얼굴을 쏘옥 내밀고 눈을 초롱거리며 겁먹은 얼굴로 나를 쳐다보던 안드레! 내 눈을 의심하며 꽃밭으로 달려갔다. 작은 안드레는 겁을 먹고 자꾸만 도망질을 한다. 따라가다가 뒤돌아 보니 <어? 우리 안드레는 저기 있네. 그럼 제는 누구야? 어머나, 새끼구나. 새끼!> 어쩌면 안드레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 너무도 똑같은 새끼가 멀리 자꾸만 머얼리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네 아빠 여기 있는데 너 어디가? 돌아와 제발!> 그러나 안드레 2세는 걸음아 날 살려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더니, 이날 이때까지 한 번도 우리 집에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만 매몰차고 정 떨어지면 영영 남이 되는 줄 알았더니, 미물도 맘 한번 돌아서면 발길을 아예 끊는구나 생각하니 맥이 풀리고 기가 막혔다. 나는 넘 반가워서 너를 데리러 달려갔는데, 내가 무서워서 도망치더니 제 아빠 보러 얼굴 한번 안 내민다. 안드레 역시 한 번도 제 숙소에 새끼를 데려오지 않는다. 이것이 정녕 미물의 세계일까! 그렇다면 인간의 세계에서는 이러한 일이 정녕 일어나면 안되는 게 아닐까?
우리가 이러한 미물을 거두게 된 것은 안드레를 장난감 애완동물로 삼자는 것이 아니었다. 오로지 에미를 잃고 홀홀단신 먹고 잘 곳이 없는 근본적인 생계의 문제 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름다운 이 세상 구경하라고 잠시잠깐 보내졌는데, 온갖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가끔은 한시여정(閑時旅程)도 누려보라고 보내졌는데,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못 본체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3년 전 TV에서 한국의 베이비 박스를 첫 보도한 적이 있다. 중세의 고아바퀴가 원조가 되어 유럽에서 재등장한 베이비박스는 병원 뒷마당 헛간에 설치되어 죽어가는 새 생명을 구해보자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백의의 순결한 조상을 가진 이 나라에서 베이비박스가 숫자를 더해간다는 요즘 보도는 우리들을 멍하게 만든다. 베이비박스의 찬반의 문제도 참으로 아이러니컬하다. 구명정신과 부추킴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면 어느 쪽이 우세할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아마도 사람의 생명을 논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안드레이야기를 마치면서 내가 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지 요즘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나는 그저 생명을 거두어 준 것 뿐인데 안드레는 많은 교훈을 우리들에게 남겨 주었다. 총명한 안드레는 여러 가지 묘기를 보여주며 제 주인을 즐겁게 해 주었고,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한번 각인시키며 수많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중에서도 고양이를 끔찍하게 싫어하던 내게 긍정과 부정의 차이는 손바닥이나 동전의 양면성과도 같음을 깨닫게 하여 세상이나 미물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지게 하였다. 그러나 인간과 미물은 서로에게 상처와 아픔도 남겨 주었다. 그 중에서 한가지 예를 들자면, 우리는 안드레를 왕따의 왕으로 만들어서 그 짧은 생애에 심각한 고통을 주었으며, 안드레는 머지않아 이별의 아픈 마음을 우리에게 선물할 것이라는 징조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다. 오늘도 지방도 수리티재에 쓰러져 있는 야생동물의 주검을 넘나들면서, 나는 요즘 약아빠진 마음을 먹게 되었다. 갑자기 다가올 안드레와의 이별이 너무나 두려워서다. 회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고통을 조금이라도 감해보고자 지금부터 서서히 정을 끊어야겠다는 모순된 생각 말이다.
無에서 有로 탄생하여 한 형상으로 존재하다 먼지 한 줌 無로 다시 돌아가는 생명의 굴레가 인간과 미물사이에 무엇이 다르랴~~그러나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살아가는 스토리가 한낱 먹이 본능주의인 날짐승과는 정녕 비교가 될 수 없기에.... 사람의 탈을 쓰고 태어났으면 모름지기 짐승과도 같은 단순한 삶의 법칙을 배워서는 아니 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면서 안드레이야기를 맺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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