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든 지역발전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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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든 지역발전을 생각한다.”
  • 나기홍 기자
  • 승인 2012.01.05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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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보은군민장학회 상임이사
(주) 보은기업대표이사 (의)보은요양병원 이사장
 60년 만에 온다는 2012년 임진년 흑룡의 해다. 변화무쌍한 용처럼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多事多難) 할 것이라는 역술인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는 60년 전 용의 해에 태어난 흑룡 띠로 지역을 위한 일에는 누구보다 앞장서 일하면서도 늘 정상에 오르지 않고 칠부 능선에 머문다. 그래야 모든 공을 선배와 후배들에게 돌릴 수 있기 때문일까?
향토 대표기업인으로 (주)보은기업과 의료법인 보은요양병원대표, 8년간의 보은문화원장, 보은군민장학회 상임이사 등 힘겹고 무거운 일들을 거침없이 해 내면서도 늘 뒤쪽에 서있는 박재완(60·수한면 후평리)대표가 꿈꾸는 보은은 무엇일까? <편집자 주>

“축제는 만나고 느끼고 감동받는 것.”

처음 보은문화원장에 당선됐을 때 만해도 박 대표를 그저 자수성가한 기업인 정도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문화원장이 된 그는 속리산면을 중심으로 개최되던 ‘속리축전’을 과감히 보은으로 끌어내렸다. 당연히 반발이 있었지만 축제는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반발은 없어졌다.
축제기간 참여인원이 군민전체가 나왔을 정도로 성황을 이뤘고 남녀노소 모두가 축제에 참가해 먹고, 즐기고 소통했다.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박 대표는 “축제는 만나고 느끼고 감동받는 것이다.”라고 정의한다. 진정한 축제는 모두가 소통과 감동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고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은 8년간 문화원장을 역임하면서 축제다운 축제로 변모시킨 그는 새로운 문화페러다임을 제시하고 떠나는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겼다.

“장학회의 목표는 타 지역으로 가는
우수인재와 교육비유출을 차단하는 것.”


보은군민장학회가 창립될 당시 박대표는 상임이사를 맡았다. 그의 확고한 장학방향을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주)한화로부터 20억원을 확보 이를 종자돈 삼아 매년 군에서 10억을 출연하기로 하고 100억의 장학기금을 목표하는 비전을 제시하며 보은군민장학회를 출범시킨 당시 박종기 군수의 업적은 보은교육의 미래를 생각한 박 군수 최고의 치적으로 지적한다.
이향래 군수도 장학회의 목표와 비전을 충분히 인식하고 장학회가 장학기금 86여억원을 형성하며 확고히 자래매김 할 수 있도록 결정적 역할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박 대표는 “장학회의 목표는 우수인재 유출을 막아 교육을 이유로 타 지역으로 유출되는 우수인재와 교육비를 차단하는 것이다.”며 “ 실제로 우수인재의 지역고교진학과 이를 통한 명문대 진학을 유도함으로써 지역에서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했고 실제로 3년 전 부터는 각 중학교 3학년 상위 20등 이내의 우수한 학생 중 지역 내 고교 진학률이 100%에 근접했다.”는 말로 장학회의 성과를 설명했다.
장학회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정상혁 군수의 적극적인 협조와 노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철저히 보은의 이익과 미래의 희망이 어디에 있는가를 고민하는 대목이다.


“우리가 지금 이만한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전쟁과 배고픔 속에서 자유를 지켜내고 경제를 일군 분들 덕택”

복지에 대한 박 대표의 관심은 유별나다.
박 대표는 “ 어려웠던 시절 전쟁과 배고픔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모진 고생 이겨내며 자식들 교육시키고 정작 당신들은 늘고 병들어 갈 곳이 없는 안타까운 분들이 계시다.”며 “이분들이 고생과 헌신에 감사함을 느끼고 보답할 줄 알아야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보은요양병원이다.
국가나 자치단체의 보조금 한 푼 받지 않고 60억 원을 투자해야하는 보은요양병원 인수를 계획하고 주변사람들과 협의를 할 당시 주변사람들은 “실패한다. 부도난다. 한 푼도 못 건진다.”는 등 대부분이 만류했다.
그러나 그는 확신을 가졌다. 봉사하는 마음 정직한 마음으로 꼬인 일들을 하나 하나 풀어나가면서 불과 2년 만에 200병상의 병실은 만실이 되었고 여기에 종사하는 종사자가 100여명을 넘는다.
자식들을 위해 평생 고생만한 내 부모 같은 어르신들을 쾌적하고 편안하게 모시는 의료기관으로 확고히 자리하고 고용창출을 통해 지역경제에도 크게 기여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 것이다.
박 대표는 “쾌적한 병원환경, 수준 높은 의료진, 친절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명품병원을 만들어놓았으니 군민들께서 많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었으면 한다.”고 병원을 소개했다.

지난해에는 보은중학교총동문회 회장과 한국자유총연맹 보은군지회 회장을 맡았다.
“이제는 당신 같은 사람이 회장을 맡아야 한다.”는 동문들과 연맹회원들의 집요한 권유로 힘겹게 결심한 것이다. 안하면 몰라도 하면 확실하게 하고야 마는 박 대표의 추진력과 지도력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박 대표는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시대적 요청에 부합되지 않는 감상적 통일지상주의나 극단적이고 냉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남과 북이 전쟁의 위협을 제거한 평화의 토대위에 함께 번영하는 통일을 준비하는 새로운 트렌드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다. 보은중학교동문들에게는 “지역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용기 있게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해 지역발전을 위해 모두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때라는 것을 강조한다.
합리성 객관성, 시대적 흐름을 간파할 줄 아는 깊이 있는 시대정신과 역사인식이 느껴진다.

“부(富)는 하늘이 맡겨놓은 것 함부로 관리해서는 안돼”

박 대표는 보은서 나고 자라고 공부한 토박이다.
젊은 나이에 사업을 시작 나름대로 경제력을 얻게 되었지만 1985년 잘나가던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절망도 느꼈고 어려움도 있었다.
항간에서는 “남의 돈 줄 것을 안줬다”는 말도 있었지만 박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억울한 피해자다.
절망과 좌절을 딛고 재기하는 과정에서 사실이라면 누가협조하고 도와줘 개기에 성공할 수 있었겠는가?
본인의 노력과 열정, 주변의 협조도 있었지만 운이 따랐다. 사업실패 후 불과 10여년 만에 다시 재기에 성공한 것이다.
성공과 실패, 다시 성공을 통해 소설같은 인생을 살아온 박 대표는 부에 대해 “ 부(富)를 이루기도 어렵지만 관리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나의 부는 나의 것이 아니고 살아있는 동안 하늘이 나에게 맡겨놓은 것으로 나는 조그마한 관리자라고 생각한다.”고 부의 개념을 정리했다.
박 대표가 젊은 나이였던 7~80년대 그는 시내버스, 관광버스, 택시, 화물차등 운수업계에 뛰어들어 운수업계 최고의 자리를 누렸고 건설업에 뛰어들어 이역시 성공으로 이끌며 보은지역 최고의 건설업체인 보은기업을 키워냈다.
문화원장 재직시에는 군민이 요구하는 문화적 욕구를 잘 접목해 새로운 축제문화를 뿌리내리고 문화적 안목을 다변화시키며 일등문화원장 소리를 듣게 했다. 지금 국민적 화두는 복지다. 박 대표는 보은요양병원을 인수해 짧은 기간만에 보은지역 최고의 명품병원을 만들어내며 고용창출과 복지측면에서도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경제, 문화, 복지, 교육 모든 분야에 한번 손대면 반드시 최고를 만들어 놓는 능력과 열정이 있으면서도 그는 왜 더 오르려 하지 않는 것일까?

박 대표는 “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300병상 규모의 병원을 만들어 정신질환, 치매, 노인성질환 등으로 고통 받는 이웃에게 보건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일과 전통적 문화를 보호하고 문학, 음악, 공연, 축제등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보은문화재단을 만들어 보은군의 문화가치를 상승시키고 양질의 복지서비스제공과 지역주민의 일자리창출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박 대표는 동갑내기 부인 김정숙 여사와의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있다.
/천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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