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기본적으로 신문의 독과점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때문에 지역신문이 하나이기 보다 적어도 둘 이상이 있어야 한다는 게 평소 지론이다. 물론 신문구독을 본의 아니게 강요당하는 사람들이나 광고주 등 기타 입장에선 시각을 달리할 수 있다. 독자의 입장에서 신문 두 개 정도는 나와야 이것저것 비교 평가가 가능하고 알권리와 정보를 보충하는데 유리하다는 발상이다. 또 적당한 경쟁이 신문의 수준을 끌어 올린다. 건강한 숲에 다양한 생태가 존재하듯 한 방향으로 치우칠 수 있는 여론 독무대도 막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은신문에 이어 보은지역을 근간으로 하는 또 다른 지역신문이 발행되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환영하고 신선하게 평가한다. 그런데 이런 호감은 깨졌다. 지난 19일자 모 지역신문에 나간 ‘교차로 점멸신호등이 남긴 교훈’이란 제하의 취재현장 글은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의 글이라지만 사실이 왜곡된 것 같아 씁쓸하다.
이 신문은 지역언론의 점멸등 운영과 관련된 태도를 나무랐다. “그동안 많은 사고가 발생하고 인적 물적 피해가 발생하는데 지역언론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주민들이 군청홈페이지에 문제를 제기했었고 보은군의회에서도 지적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걱정과 우려를 담은 기사는 지방지와 지역신문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문제점을 알고도 방관했던 기자들, 특히 점멸등 시행을 옹호하기까지 했던 기자들은 자기반성의 시간을 권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우리 뿐 아니라 여타의 언론도 전 지역 시행에 대해 문제제기를 담아냈다. 정도의 차이 일뿐 의도한 메시지는 이 신문과 맥을 같이 한다. ‘목숨을 담보로 한 무모한 실험’, ‘교통사고 꽝꽝’, ‘신호등 없어지니 질주본능’, ‘검증 안 된 점멸신호제도’, ‘과속방지턱 등 감속장치 마련 시급’, ‘점멸등 전환 뒤 연일 교통사고’ 등 모든 지역 또는 지방 언론들이 자극적인(?) 제목을 동원, 경각심을 일깨웠거나 위험하다는 신호를 쏟아냈다.
작년 10월 김용판 충북지방경찰청장이 보은군을 방문했을 때도 간담회에서 기자들은 지역실정을 설명해 “주민 뜻을 반영하겠다”는 대답을 이끌었다. 보은신문의 경우도 점멸신호 작동(7월) 이전인 6월 ‘전국 최초보다 안전이 우선’ 보도를 시작으로 ‘전지역 점멸신호 리스크 너무 크다’, ‘편의보다 안전을 원한다면’ ‘현수막이 사고를 부른다’ 등의 제목으로 한 방향으로 치우친 시각을 경계하면서도 신중하게 접근했다. (인터넷 검색가능.)
그럼에도 상대 지역지는 경쟁상대일 수밖에 없는 타 신문에 대해 마땅히 내놓아야 할 근거는 생략한 채 옹호하고 방관했다는 일방적 폄하의 글을 실었다. 그동안 이 신문이 문제의식을 갖고 꾸준히 보도한 것은 점멸등 일부 폐지 여론형성에 일정부분 기여했고 높게 평가받을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비난받아야 한다면 보다 권력자에게 향하는 대신 애꿎은 자들을 내려깎고 마치 홀로 애향심을 발휘한 듯한 인상이다.
이 신문 말처럼 수긍도 반성도 사과를 이끌어내려면 지적에 합당한 근거가 제시했어야 맞다. 글을 작성한 기자가 입증이든 설명이든 ‘기자들이 왜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져야하는지’ 구체적으로 일깨워줬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적지 않은 독자들은 주관에 기초한 막말(?)도 맞는 것으로 오인한다. 교통사고 피해자에게는 위험을 알고도 방조의 누를 끼친 죄인이 되는 꼴이다. 설령 옹호했다손 치더라도 비난받을 일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고 기자가 취사를 선택할 일이지 강요는 아니다. 전구역 점멸등 전환을 획일적으로 옹호내지 거꾸로 비난했다면 다양성 차원에서 이것이 오히려 이상한 사회다.
논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흠집 내고 문제제기를 집단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고 책무를 저버린 행위로 몰아가는 행태는 획일적 사회를 강요하는 것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갈등을 조정할 기자가 취할 공정한 자세는 결코 아니다.
/김인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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