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고고한 자태(姿態)는 곧은 절개와 굳은 의지를 표상하며 애국가 2절 가사에도 있듯 우리민족의 기상이자 혼(魂)과 염원(念願)이 담겨있다.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침엽교목으로 수피는 밋밋하나 자라면서 점차 큰 비늘 조각처럼 벗겨지고 회백색을 띠기 때문에 백송(白松)또는 백골송(白骨松)이라고 부른다.
원산지는 중국 베이징 부근이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중국을 왕래하던 사신들에의해 전해 온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백송은 흔히 볼 수 없는 희귀한 소나무이고 오랜 세월동안 선조들의 관심과 보살핌속에 살아온 나무이며 생물학적 자료로서 가치가 높아 크게 자란 백송은 대부분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그간 우리나라 전국에 10여 그루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하여 왔으나 서울 통의동 백송을 비롯 일곱 그루는 죽었고 현재는 서울 재동, 이천, 예산 등에 있는 다섯 그루 정도가 남아있다고 한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보은우체국에도 1930년대 심은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백송이 청사(廳舍)앞에 자라고 있었으나, 지난해부터 서서히 잎이 마르기 시작하여 이젠 거의 고사한 상태로 푸른 잎이 보이지 않고 있다.
보은군 어암리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하여오다 몇해전 죽었기 때문에 우체국 백송에 대한 군민들의 관심과 기대가 높았는데 관리책임자로서 송구스런 마음 금할 수 없다.
보은우체국 백송은 1938년 심은 것으로 수령(樹齡)이 약 80여년 된 것으로 추정되며 밑에서부터 가지가 여러 갈래로 자라 특색이 있고 미적인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우체국에서는 이를 보호·관리하기 위해 1982년 현 청사 신축시에도 백송 주위를 피해 건물을 지었고 해마다 소나무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관리하여 왔다.
평소 소나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필자도 2009년 부임하자마자 나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하여 나무 전문기관에 진단을 의뢰하기도 하였다.
그 당시 전문가들에 의하면 청사건물이 막혀 통풍이 안되고 나무 주변이 아스팔트로 되어있어 주변 환경은 좋지 않으나 나무 발육 상태는 아주 양호하다고 진단하여 주변정리 등 간단한 처방만 하였다.
특히 그 해에는 솔잎 색깔도 선명하였고 나무에서 나오는 송진(松津)도 많이 나오고 솔방울도 빽빽하게 달려 보는 사람들이 탄성(嘆聲)을 자아낼 정도였다.
그러다 지난해 봄부터 청사쪽 끝부분에서 잎이 마르기 시작하여 서둘러 전문기관에 다시 진단 의뢰를 하고 군과 협조하여 처방대로 주위 아스팔트를 제거하고 뿌리와 가지 등에 약을 투여하는 등 백송 살리기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젠 푸른빛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고 나무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과 소나무에 긍지를 갖고 있는 보은군민들에게 무한책임을 느낀다.
그동안 백송 주변에 쉴 수 있는 목재의자를 설치하여 많은 사람들이 나무 감상도하고 만남의 장소로도 활용되었는데 이젠 옛날이야기로 추억 속에 남게 되니 허전함 뿐이다.
보은군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나무에 벼슬이 내려진 유명한 정이품송이 있고, 이에 부인격으로 전해오는 인접 서원리 정부인송을 비롯 소나무 군락지가 곳곳에 있어 감탄(感歎)을 자아낸다.
백송이 고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무와 같은 식물도 동물과 같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기에 나무의 성스러움과 자연의 신비에 매료되는 좋은 교훈(敎訓)을 얻게됨을 위안으로 삼는다.
그동안 보은우체국 백송 살리기에 협조하여 주시고 관심과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무한 감사와 고마움을 드리고 아쉬움을 함께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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