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리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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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리비 소리
  • 농협중앙회 보은군지부장 류영철
  • 승인 2010.12.0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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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펑펑 내린다. 이번엔 기상대 예보가 정확하다. 창을 통하여 눈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낭만이 아닌가 생각한다. 정신없이 눈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어디에선가 빗질 소리가 들린다. “싸아악 싸아악 싸아악,,,”
창문을 열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사람은 보이지 않고 빗질 소리만 들린다. 주섬주섬 점퍼를 입고 밖으로 나오니 주차장 끝에서 남자직원 둘이서 빗질을 하고 있었다. “고생하네. 나도 함께 하지” 하며 빗자루를 달래니 직원은 그냥 들어가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내가 하도 완강하게 나오자 자기가 쓸던 빗자루를 주고는 다른 빗자루를 가지러 부지런히 창고로 달려갔다. 무심코 빗자루를 보니 요사이 빗자루와 달랐다. 매초롬한 싸리나무를 칡으로 중간 중간 꼭꼭 묶은 것이 그 옛날의 싸리비였다. “아니 이런 싸리비를 어디서 사왔나?”하며 눈을 쓸어보니 “쓰윽 쓰윽”소리와 함께 눈이 잘 쓸렸다.
전에는 싸리나무가 야산이나 들에 지천이었으나 요사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아마 잡목으로 분류되어 다 잘라졌는지 아니면 산림이 너무 울창하여 보이지 않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싸리나무는 그 옛날 생활용품을 만드는 참 요긴한 나무였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을 위한 회초리로 안방 문 위에 늘 몇 개의 싸리나무를 걸어 놓기도 하였고, 곶감이나 명태를 꽂던 탄력 있는 꼬챙이로도 쓰였으며, 또 가릴 건 가리고 보일 건 보이도록 엉성하게 짠 울타리나 삽작 대문도 싸리나무였다. 그래도 그 중 가장 흔한 것은 싸리비였다. 늦은 가을이나 겨울에 산에서 베어다가 같은 크기의 싸리나무를 골라 칡으로 중간 중간 묶은 싸리비는 집집마다 몇 개부터 수십 개씩 만들어 놓고는 일년 내내 사용했던 우리의 생활용품중의 생활용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싸리비 소리는 나의 자명종이었던 기억도 난다. 아침마다 아버지께서 마당 쓰는 빗자루 소리에 곤한 잠을 깨곤 하였다. 비 올 때를 제외하고는 아버지께서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당을 쓰셨다. 혹시 마당을 다 쓸도록 방에서 아무 인기척이 없으시면 방 앞에서 헛기침 두어 번 하셨고 그때마다 이불속에서 꿈지럭거리던 나는 벌떡 일어나 세수하러 나가곤 하였다.
“아버지께서 지난겨울에 집에서 엮은 빗자루를 몇 개 가지고 왔더니 눈이 올 때는 정말 요긴하게 써요. 여길 보세요. 이건 중국산 비인데 벌써부터 비비 돌아가서 쓸 수가 없어요” 어느 새 눈을 다 치운 직원이 두 개의 빗자루를 놓고는 비교하며 말한다. “어쩐지 오랜만에 옛날 비를 보았다 했더니 김대리 아버님 작품이구만. 싸리나무는 베는 것도 쉽지 않고 칡으로 이렇게 묶는 것도 쉽지 않는데...” “어떻게 잘 아세요.? 싸리비를 만들기만 하시면 아버지 손은 상처투성이라 장갑을 끼고 하시라고해도 갑갑하고 칡이 잘 묶이지 않는다고 꼭 맨손으로 하셔요”하며 의아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김대리! 아버님 같은 분들이 계셨으니 지금의 우리가 있는 거고, 대한민국이 있는거야. 싸리비 하나에도 이런 정성과 노력이 있으니 세계가 놀라는 경제대국이 될 것이고...”
모두가 정신없이 달려 오다보니 벌써 올해의 끝자락에 서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일들이 너무나 많아 조급증이 나고 어수선한 때에 북한의 도발로 인하여 나라 안팎이 더 어지럽다. 이럴 때 커다란 싸리비가 있다면 “쓰윽 쓰윽” 북한을 청소하고 싶다. 아주 깨끗하게 말이다. 또 아주 작은 싸리비가 있다면 복잡한 우리의 머리 속도 “쓰윽 쓰윽” 청소하고 싶다. 내년도에는 이른 아침 아버지께서 깨끗하게 청소한 마당을 처음 밟을 때처럼 그렇게 깨끗한 곳에서 새로운 꿈과 기상을 펼쳐 보이고 싶다

/농협중앙회 보은군지부장 류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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