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강회계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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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강회계를 아시나요
  • 이흥섭 실버기자
  • 승인 2010.04.01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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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는 서기 1887년 고종 24년 효자 김민태 외 15명이 각각 한민동식 거출하여 계를 결성했다. 계는 봄, 가을 강회일로 두 번 나누어 하고 계돈 이자는 이변으로 한다. 계돈이 삼십만원이 되기 전에는 쓰지 못하고 강회 날이 돌아오면 각 계원이 형평대로 음식 장만을 한다.
이 계는 이자놀이가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후학들을 깨우치고 공부에 점차 연마하도록 하는데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수강 전에는 반드시 서로가 예를 취함으로써 겸손의 절차를 알게하며 희롱과 포악과 거만, 그리고 게으른 습관을 배우지 못하게 하며 주선하는데 본받도록 한다. 계를 할때는 반드시 공평한 의논으로 무르익게 상의하여 올바르게 하고 이해관계로 자기의 의견만 주장하고 고집하는 일이 없도록 한다.
이 계에 들어온 사람이 계 취지를 저버리고 거스르게 하는 자는 단연코 제명 조치하며 이유없이 불참하는 자 또한 벌주기로 한다. 병술년 가을에 내가 풍단병으로 두달동안이나 병석에 누었는데 하루는 허준 만필이 청산 만명으로부터 박산장의 명을 받아와 하는 말이 가을과 겨울철에 대곡 선생 유당에서 글을 읽히는데 열흘마다 서로 윤례를 행해가며 강도 뜻도 물어가며 가르치라 하니 아모게 나는 비루하고 용렬 한지라 놀랍고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공손히 답하여 나와같이 몽매한 사람은 일찍이 학문에 실상을 능멸히 여기고 예양의 거동을 익히지 못하였으니 어찌 감히 분수에 넘치는 가르침을 받으리요 하였다.
그리고 헤어진지 며칠이 안되어 들이는 소문에 소송을 만났고 겸하여 내상까지 당하여 장황한 나날을 보낸다하니 마음으로 호사다마 함을 탄식하였다.
그러다가 섣달 보름께 허군이와 말하기를 이미 박산장의 가르침을 받았으니 한번쯤 강의를 아니할 수 없다하여 서당을 시설하는 고로 억지로 감기를 참고 설중에 가본 즉 두루두루 주선 하는 중에 동계와 서계에서 서로 배읍하는 절차가 모두 아름다운지라 엄숙히 생각하니 이 서당에서 주선자가 아니겠는가 이어서 강의를 마치고 헤어졌다.
금년 입춘날에 강을 불통한 사람들이 분한 마음으로써 다시 강의를 열자하니 이른바 부끄럼을 아는지라 마음속으로 심히 어여삐 여겨 허락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경에 뜻을 분명하게 문답을 못해주는 것이 부끄러웠다. 전과 같이 예의를 행하고 강의를 마쳤다. 여러 공론이 이렇게 하는 것이 사실 후학을 권장하는데 도움이 있다하여 영구적인 계회를 결성하는 것이 가장 좋다하여 즉시 계안을 작성하여 춘추강회게라 하고 서문을 요구했다.
박산장의 하풍을 따름인 즉 어찌 감송치안으리요.
서기 1887년 고종 24년 15명에 계원이 철저히 계금을 늘려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시키고 훈장을 두어 가근동에서 학문을 닦기위해 모여들어 문암서도 제를 넘어 학도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닦았다. 그러나 또 순탄치는 못했다. 강당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강당은 무너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후예들은 백미 한말씩을 내고 입계시켜 오늘까지 오랜 세월에 우여 곡절을 겪으면서 춘추강회계가 명칭을 강회계로 명하고 63명의 계원히 합심하여 매년 봄에 한번씩 계를 하고 있다. 앞으로는 더 이상 가입할 수도 없고 불순종 하는자는 이유막논하고 본전도 없이 탈계한다.
토지 재산으로는 답 300평, 전 318평이 충청북도 고서2 보은군편이다.
/이흥섭 실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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