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農心)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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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農心)의 봄
  • 김정범 (내북면)
  • 승인 2010.03.2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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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이 또 많이 쌓였다. 마치 모든 나무가 설도화를 피운 듯 앞산의 설경이 너무 아름다워 한동안 창문을 닿지 못했다.
한겨울 같으면 아침 일찍부터 눈 치우기에 바빴을 테지만 낮이 되면 녹으려니 하고 그냥 두었다. 책을 읽다가 무료한 생각이 들어 경로당엘 가니 많은 분들이 모여 있다. 날씨가 좋았으면 일들 하느라 경로당이 비어 있었을 테지만 오늘은 날씨 탓으로 모여 있는 것이다.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마자 어느 한 분이 날씨를 탓하며 짜증난 소리로 며칠 전 폭설로 인하여 쓰러진 인삼밭 복구 작업 할 일을 걱정 한다. 그러자 부창부수 격으로 걱정하며 화제는 자연히 날씨 쪽으로 쏠리게 마련이다. 춘분이 사흘 밖에 남지 않은 예년의 이때쯤 이면 그래도 날씨가 따뜻하여 봄을 느낄 수 있었는데 금년 3월은 봄 같지를 않고 아직도 겨울 같기만 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금년은 겨우내 그리 오지 않던 눈이 3월이 되면서 눈이나 비가 사흘이 멀다 않고 내리는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며칠은 이삼일 간격으로 눈이나 비가 더 내릴 것 같다는 기상 예보도 있고 보면 짜증을 내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지금 이 분들의 봄 같지 않다는 말은 계절의 날씨 탓만이 아니고 농심(農心)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침 설경의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겨 행복을 느꼈던 시간이 이 분들에게는 미안한 생각으로 되돌아와 마음이 편치 않다.
고대 중국의 4대 미인 중의 하나인 왕소군이라는 한(漢)나라 궁녀가 있었다. 날아가던 기러기가 그 녀의 미모에 홀려 날개 짓 하던 것을 잃어버리고 떨어졌다는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한나라와 흉노국간의 정략에 의해 흉노 왕에게 가게 된 왕소군이 흉노 땅에 이르자 湖地無花草 春來不似春(오랑캐 땅에 꽃이 없고, 봄은 왔으나 봄 같지를 않구나)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 시를 남겼는데 우리는 이 이야기를 그냥 재미있는 고사 중의 하나로만 생각 했지 그 녀의 불행에 대하여는 이해하려 하지 않은 것처럼, 날씨 탓에 할 일을 못하고 또 폭설로 인하여 입은 피해의 복구 작업 걱정 때문에 봄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의 농심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아침 설경을 아름답다고만 느꼈던 마음이 꼭 죄를 지은 것 만 같다.
아무리 힘들게 일하고 수고 하여도 그에 대한 값이 희망 보다는 먼저 한숨을 쉬어야 하는 우리 농민들, 어디 이 뿐이랴 이제는 농사일을 하려 해도 기력이 없어 어찌 할 줄 모르고 걱정만 하고 있는 노인들, 생각하면 답답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가을에는 쌀값 하락으로 농민들을 울리더니 이제는 폭설과 날씨마저 금년 농사도 시작하기 전부터 농심을 애타게 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금년 한 해는 우리 모든 농민에게 진정 꽃피고 새우는 농심의 봄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김정범(내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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