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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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방학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10.01.1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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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시작부터 온 세상을 새하얗게 만들어 놓은 눈은, 계속된 한파로 녹지 않아, 차가 많이 지나는 길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있다. 눈이 많이 오던 날은 몇 년 만에 만나는 함박눈이라, 친구와 함께 눈이 쌓여 발이 푹푹 빠지는 하얀 길을 걸어 보기도 했다.
어제는 모처럼 외출을 했는데, 보청천주변과 멀리 가까이 보이는 산이나 들 모두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저 눈처럼 깨끗하게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돌아올 일을 미리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습관이 나 자신을 힘들게 만든다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보청천 동쪽 둑길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눈길을 만들어 아이들이 비닐포대 등을 갖고 눈썰매를 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정말 재미있어 보여 한 눈을 팔다가 자전거 길을 벗어나기도 했었다.

저 끝없는 바다에서
우리들 꿈이 내린다.
우리 머리위에 쌓이고 쌓이는
하얀 꿈들.

어느새 온 세상을 덮은
하얀 꿈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학이 되어 날아간다.

저 높고 높은 하늘에서
아이들 놀이감이 쏟아진다.
눈사람 만들고 눈싸움하는
하얀 놀이감들.

어느새 옷 깊숙이 들어간
장난감들은
우리들 마음속에
벗이 되어 지나간다.

위의 글은 큰 아들이 4학년 겨울방학 때 쓴 <눈>이라는 시 전문이다. 내 아이의 표현대로 하얀 눈은 아이들에게 꿈이고 큰 놀이감인 것 같다. 보청천 둑길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도 그 놀이감 때문에 동심을 마냥 펼칠 수 있고 즐거운 것이 아닐까? 그리고 겨울방학 기간이라 더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나도 초등학생시절에 겨울방학이 오면 신이 났다. 추운 날, 30분 이상을 걸어 가야하는 학교를 가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늦게까지 잘 수 있고, 마음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찬바람이 쌩쌩 불고 추운 날에도, 얼음이 얼은 신작로길 옆의 논에 가서 썰매를 탔다. 그 곳에는 온 동네 아이들이 다 모여 아이들 천지였고, 팽이 치는 아이부터 다른 아이들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악동까지 다양했다. 산과 논의 경계인 둑에 마른풀과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여가며 하루해가 기울 때까지 얼음지치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옷에서 불에 탄 나무들의 알싸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한국문학전집을 끌어안고 그 긴 방학을 보낸 것 같다. 고등학생일 때는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아 하루의 일과 속에 우체부에 대한 기다림이 있었고, 감상적인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라디오를 달고 살았다. 라디오는 평소에도 심야방송을 즐겨 들어 그냥 켜 놓고 자는 날이 일쑤였다. 그 때 즐겨 들었던 “별이 빛나는 밤에” 라는 프로그램은 지금도 계속되고 오프닝 음악도 그대로 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시그널 음악을 가끔 들으면 그 때의 DJ였던 차인태님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져 가슴이 마구 뛰고 지난 시간이 다시 찾아와 나를 흔들어 놓는다. 낮에는 가요시간에 늘 기다리는 곡이 있었다. 그것은 가수 장현의 노래를 좋아한 나머지 그 가수마저 짝사랑을 하여 매일 장현의 노래를 기다렸고, 그의 노래가 나오면 그를 만난 듯 기분이 하루 종일 좋았었다. 지금은 듣고 싶은 음악이 있으면 인터넷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이라도 들을 수 있는데 그 당시는 녹음기조차 없었다. 그러나 꿈은 많았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도 우산을 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 눈을 맞으며 좁은 오솔길을 걷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고, 그 길을 걷다보면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에 서사시를 써본 적도 있었다.
내 아이들의 겨울방학도 몇 가지 기억되는 일들이 있다. 작은 아이가 유치원 때, 어느 날 점심시간에 밥을 주려고 집에 와봤더니 고만고만한 친정조카들과 놀고 있었다. 그런데 밥을 먹었다고 한다. 아침에 바삐 가느라 설거지도 하지 않고 갔는데 의자를 갔다놓고 설거지를 해서 그 그릇에 밥을 김치와 먹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엄마, 엄마! 손님이 오면 주인이 밥을 차려 주는 거지?”라며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내게 칭찬을 받고 싶어 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조금씩 성장해 갔다.
또 어느 날은 소화기를 만지고 놀다가 터뜨리고 말았다. 큰 아이의 전화를 받고 집에 와 보니 뽀얀 연기가 가시지 않은 상태로 분홍색분말이 온 집안 곳곳에 흩어져 기가 막히고 어디서부터 치워야할지 몰랐다. 난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때리고 말았다. “내가 그러지도 않았는데 나는 왜 때려요.”하며 항의하는 큰애에게 동생을 말리지 못한 연대책임이라며 같이 나무라고 집을 치우기 위해 밖으로 쫓아냈다. 남편과 아는 사람까지 불러 하루 종일 집을 치우고 세탁기를 몇 번씩 돌려야 했다. 지금도 큰애는 그 때 일을 두고 억울해한다. 동생한테 만지지 말라고 했더니 자기가 잘 안다고 하더니 펑 터졌다고 한다. 사실 그 때 속상했던 것은 어른 없이 두 아이만 집에 남겨둔 내 상황이 더 속상했었다.
이렇게 장난으로 인해 일도 저지르고 놀면서 보내는 겨울방학은 아이들의 마음과 키가 부쩍 자라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겨울방학은 초, 중, 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단계로 준비할 것들이 많아 시간을 잘 활용하여야 할 것 같다. 부모님들은 이 중요한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관심을 갖고 여건을 갖추어 주는데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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