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않은 길...
상태바
가지않은 길...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10.22 09: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판이 땅을 드러내며 조금씩 비어가고 있고, 보랏빛 쑥부쟁이도 코스모스도 예뻤던 꽃과 줄기가 퇴색되어가고 있다. 반면, 빨간 사과와 과실들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는 계절이다.
이 풍성한 결실의 계절에 맞게 농업인의 잔치가 지난 8일에 있었다. 이제는 접촉할 기회가 없어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 농촌과 관련된 직장에서 농업인들과 함께하며 농촌이 나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21년이란 시간이 내게는 있었고, 그곳을 떠난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나의 30대와 40대 초반을 우리 지역의 농촌여성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며 그 분들 개개인의 생활 깊이까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었다. 그때와는 변화된 모습으로 그 분들과 여러 가지 인사와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 이야기 중에 나를 그리워했다는 분의 말을 듣고 지나간 시간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하루 출근을 하면 오후가 되면 늘 피곤함이 따라다녔던 것과 그래도 그 분들과 부딪치며 보람과 기쁨이 있었던 시간들, 그리고 아직 나의 존재가 남아있다는 것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지 않은 부분을 갖고 싶어 하고, 자기가 현재 걷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지 의심을 하며 자기가 가지 못하는 길을 동경하게 된다. 나 역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면서 집에서 집안 잘 꾸미고 아이들 잘 챙기는 전업주부의 길이 부러웠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며 많은 시간을 함께 있어 주기를 원하는데, 직장을 다닐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아이가 아플 때였다. 아이가 “엄마 나랑 있어줘. 사무실 가지 않으면 안돼? 나 학교 다녀와서 혼자 병원가야 돼?” 나와 떨어지기 싫어하며 힘없이 말하는 아이, 그리고 병원을 내가 데려가지 못하고 아이 스스로 가야 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작은애는 학교에서 돌아와 분명 집에 엄마가 없는 것을 잘 알면서도 방마다 문을 열고 “엄마! 엄마!”하고 불러 본다고 말했고, 어느 날은 울면서 “엄마 직장 때려 치워!”라고 심한 말을 한 적도 있었다.
큰애가 중학교 2학년, 작은애가 초등학교 5학년 때 21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었다.
직장을 그만둘 무렵, 난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있었다.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나를 보니 밖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웃는 모습으로 친절히 대하면서 집에 돌아오면 피곤하여 아이들에게 소리 지르고 남편에게도 굳은 표정으로 짜증을 잘 내고 웃는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있었다. 사실 직장 일도 나 자신과 내 가족을 위해 다니는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닌데 가장 소중한 내 가족에게 친절과 웃음이 인색해 있었다.
그런 내 자신을 보며 이제 직장을 접고 집에서 쉬며 가족에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20년 이상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남편의 반대는 생각보다 컸고, 그 당시 400여명이 넘는 생활개선회원들과의 끈끈한 인연과 퇴직하고 돌아서서 바로 후회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에 결정을 내리기에 갈등이 컸다.
일주일간 팽팽하게 맞섰던 남편한테, 직장을 계속 다니기에는 내 심신이 너무 힘들어 이제 쉬면서 내가 꿈꿔왔던 또 다른 일을 할 것이며 아이들을 성공적으로 키워보고 싶다. 그리고 소홀했던 남편에게 따뜻함이 묻어나는 가정을 제공하고 싶다고 했더니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길이라면 그걸 믿고 자기도 이제 내 의사에 따르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 때의 결정은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 당시 싸움꾼인 작은애는 엄마 집에 있으니 너무 좋아서 이제 아이들하고 안 싸우고 학교 끝나면 집에 얼른 오고 싶다고 했을 정도였다. 큰애는 나의 부재에 대해 그리 예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아이는 너무도 컸다. 사실 아이들이 엄마가 집에 있다고 해서 다 잘 자라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직장을 다니는 자녀가 다들 정서불안으로 산만한 것은 아니다.
퇴직 후, 아이와 남편에게 좀 더 친절해지기는 했으나 적응이 되지 않은 적도 많았다. 좀은 아픈 기억이지만, 다니던 직장과 내 업무였던 것들을 신문에서 접할 때,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었다. 그 때 나의 기도는 집착과 욕심을 버리고 또 버리자는 것으로 일관했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생각해보니 직장생활동안 지독할 정도로 오만했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이제 돌이켜 보면 내가 잘한 것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결혼 후, 아이들을 키우면서 직장생활을 놓지 않았다는 것과 또 적기에 직장을 그만 두었다는 것이다. 나를 좀은 영글게 했던 것은 직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 퇴직이후에는 새로운 많은 것을 보고 경험 할 수 있어서 나를 끊임없이 성장하게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있었던 직장의 자리에는 나의 후임자가 일을 잘 수행하고 있어서 내가 직장에 있었을 때나 떠났을 때나 변함이 없지만 나의 가정은 아니다. 내 소중한 아이들과 남편에게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많은 것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은 직장을 접고 나의 심신을 오직 가족 구성원들의 행복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이번 농업인대회때,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듣고 이제 직장생활에서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과 작은 일이지만 나의 역할이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과 곧 준비를 통해 그 분들과의 만남이 이어질 것이란 것에 대해 지금부터 설레 인다.
/송원자 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