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3 (다래를 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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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3 (다래를 따며)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09.10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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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주말에 지인의 사는 모습과 계절이 먼저 오는 산촌에서 가을의 향기를 느끼려고 속리산면 도화리(대목리)에 간적이 있다. 그 곳에서 의욕이 넘치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세 부부를 만나 어둠이 내리는 가을을 공유하며 활력이 넘치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꼭 도화리에서 천왕봉을 한 번 오르고 싶다는 바람도 가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밤하늘에는 예쁜 초승달이 살포시 웃으며 나의 집까지 안내해주었다.
그 날의 다짐대로 지난 주말에 친구 내외와 도화리에서 천왕봉을 올랐다. 오름길에 두꺼비를 만나 깜짝 놀라기도 했고 다람쥐와 도토리 그리고 자생하는 꽃들을 만났다. 한적함을 깨고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었고 높이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의 생태도 볼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등산로가 잘 되어 있었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적함 속에서 숲이 가져다 준 많은 것 들을 향유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속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 정상에 서니 좀은 밋밋함도 있었지만 사방을 둘러보니 풍광이 아름다웠고 특히 문장대쪽의 바위가 절경이었다. 고추잠자리가 맴도는 천왕봉에서 잠시 머문 뒤, 내려오는 길에 다래를 따게 되었다.
다래 덩굴이 타잔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고 다래도 많이 달려 있었다. 말랑하게 익은 것은 아주 달콤하였고, 익지 않은 것은 술을 담으면 좋다고 하여 다래 덩굴 속으로 들어가 다래를 땄다. 친구는 과일 농사를 지으려면 과실이 익을 때까지 많은 노력과 땀이 필요한데 우리는 하늘이 지어놓은 다 익은 열매를 그저 따기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좋은 기회냐 그러니까 딸 수 있는데 까지 따자고 했고, 정말 큰 배낭에 더 이상 채울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땄다. 친구는 신이 나서 다래를 따며 최근 들어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놀이가 없었다고 했는데 그 모습과 생각에서 어린애 같은 동심을 볼 수 있었다.
자녀를 키워본 사람이라면 아이의 때 묻지 않은 어여쁜 동심으로 인해 기쁨과 즐거움을 제공받았던 기억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아이들과의 아름다운 추억들이 많다.
작은애가 네 살이던 5월에, 심신이 지쳐 있어 탈골암에서 며칠 쉰 적이 있었다. 산사 입구에 커다란 노송이 있고 그 그늘 아래 부레옥잠과 수란이 떠 있는 아주 작은 연못이 있었다. 그 연못 속에는 마음에 뜨는 많은 번민처럼 몰려든 까맣고 신기할 정도로 작은 모습의 올챙이 떼가 난무해 있었다. 야위어 버린 내 마음에 자양분을 공급 받고 산사를 뒤로 하던 날, 작은 아들 녀석이 발을 동동 구르며 갖고 싶다고 해서 올챙이의 뜻과는 달리 많은 올챙이들을 집으로 옮겨 왔다.
올챙이는 탈골암의 맑은 정기를 간직한 채 양지 바른 베란다 화초 옆에 투명한 유리병 속에서 자라게 되었다. 두 아이와 우리 부부는 물론 동네 아이들까지 사랑을 받던 올챙이가, 어느 날 다리가 나고 펄쩍펄쩍 뛸 수 있는 개구리가 되기를 우리 모두는 꿈꾸듯 기다렸다.
먹이를 어떤 것을 줘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주기도 했지만 20여일이 지나도 올챙이는 변함없이 작았고, 그 동안 난 아이들에게 올챙이를 놓아 주자고 몇 번이나 얘기했으나 아이들은 싫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에 집에 와보니 유리병 안에 많던 올챙이가 몇 마리밖에 남지 않았고 물도 줄어 있었다. 궁금하여 베란다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미 까맣게 말라 죽은 올챙이 모습이 보였다. 작은 애의 부주의로 유리병이 넘어 졌고 그 애가 쏟아진 올챙이를 병에 담지 않고 그냥 버려둬 쏟아지는 햇빛으로 인해 죽은 것 같았다. 개구리가 되고 싶었던 올챙이의 부서진 꿈을 주우며 난 죄책감을 갖고 아이와 함께 남은 올챙이를 가까운 논에 놓아 주었다.
그 뒤, 우리 집에서는 오래도록 올챙이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밥을 먹다가도 작은 아이가 불쑥하는 말 “엄마! 우리 올챙이 개구리 되었어요.” 하기도 했고 논가에서 놀다가 퇴근하는 나를 보고 “엄마! 빨리 와 봐요. 우리 개구리 여기 있어요.” 하며 논을 가리킨 적도 있었다. 그리고 베란다 화초 옆에 앉아 있는 작은 청개구리를 보고 우리 올챙이가 개구리 된 것이라고도 했다.
내 가슴 한 구석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던 가여운 올챙이들. 그 올챙이로 인해 나도 아이도 성숙하게 되었다. 난 미숙한 올챙이의 몸짓으로 말과 생각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사람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하며 언젠가는 나 또한 개구리가 되리라는 소중한 꿈을 가졌고 아이도 많은 상상력과 작은 꿈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내 아이의 동심은 내게 웃음을 가득 주기도 했고 진지함과 행복감을 지금까지도 지속시켜 주고 있는데, 돌이켜 보면 그 시기가 사물 하나하나에 관심과 궁금한 것이 많아 질문이 쏟아지곤 했는데 신경을 쓴다고 했어도 좀 더 자세하고 친절하게 대답해줄걸 하는 후회가 된다.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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