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심2(이성에 눈을 뜨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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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2(이성에 눈을 뜨며)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09.03 1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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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5층에는 다섯 살 정도 된 남자아이가 있고 1층에는 그 애 또래의 예쁜 여자아이가 살고 있다. 남자아이는 5층에서 내려오면 언제나 여자아이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여자 아이는 대답을 하고 베란다로 조르르 달려가 창문사이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 모습을 볼 때도 있고, 여름철이라 문을 열어 놓은 탓에 2층인 우리 집에까지 이야기 소리가 들리곤 한다. 재잘대는 두 아이의 이야기소리를 들을 때면, 생김새처럼 귀여워 나도 모르게 웃음이 절로 나고 어떤 말을 나눌까 하는 궁금함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이미 내 아이를 품속에서 떠나보내 좀은 쓸쓸한 내 삶에 따뜻함과 활기를 가져다준다.
그러던 어느 날 5층 아이가 “초원아! 초원아! 사랑해”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아이엄마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그 풍경이 맑고 투명하게 다가와 신선함을 풍겼고 그 대화 속에 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귀여운 녀석은 사랑이란 말을 알면서 했을까? 아마 1층 아이가 같은 동성인 남자였다면 5층 아이는 사랑이란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5층 아이도 사랑이란 말을 이성간에 하는 것이란 것을 어렴풋이 알고 사용했을 것이란 생각을 하면서 나 역시 아이들 엄마처럼 소리 내어 웃게 되었다.
이성에 눈을 뜨는 시기로, 아이가 가장 먼저 이성을 접하는 것이 부모로서 동성인 부모에 대해 경쟁의식을 느낀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해 공감은 간다. 하지만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니 유아 때부터 함께 놀던 이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아이가 새로운 집단에 들어가면서 새롭게 만나는 이성에 대해 약간은 설렘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작은 아들 녀석은 5살 때 처음 유아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이는 분리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커, 그 해 1년은 적응하느라 그 애도 나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 애가 여자 친구한테 관심이 있는지 몰랐고 아니 거기까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6살 때, 2년간 다닐 수 있는 유치원에 가게 되었는데 그 때는 비교적 적응을 잘하였다. 언제부터인가 아이는 유치원에 다녀오면 어떤 여자애 이야기를 많이 하였다. 엄마인 난 내 아이가 그 애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어느 날, 아이는 “엄마! 초등학교 다른 곳 다녀도 좋아하면 결혼 할 수 있지?”하며 내게 확신을 갖고 물었다. 초등학교 학군이 그 여자아이는 삼산학교였고 우리 아이는 동광이었는데 유치원 졸업 후까지, 그리고 결혼까지 생각을 했던 것이다. 선생님 말을 들어보니 내 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를 유치원의 다른 친구들이 괴롭히지 못하게 보호하고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사랑에 빠진 성인과 별다르지 않다고 했다.
유치반이 되었을 때,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고 하듯이 아이는 이성보다는 동성친구에 대해 관심이 많아져 그 여자애 이야기는 거의 줄고 동성친구에 대해 말을 많이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5월, 처음 맞는 생일날이었다. 사전에 친구를 초대한다고 하며 초대장을 만드는데 도와 달라고 했다. 몇 명이나 하려고 했더니 몇을 꼽더니 자꾸 많아졌다. 생일 당일 날 밖에서 “엄마”하고 불러 창문을 내다보니 아이들이 줄을 지어 몰려오고 있었다. 순간 아찔할 정도로 놀랐는데 반 아이들이 거의 다 오는 것 같았다. 현관문을 열고 아이들이 들어서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 속에서 생일 케이크에 불을 밝히고 촛불을 끄고 자르려고 하는데 아이들이 어떤 여자아이 이름을 합창 하다시피 하며 같이 하라고 한다. 작은 녀석은 벌써 그 여자아이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 뒤. 내 아이는 과격하여 친구들과 자주 싸우면서 여자아이에게는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6학년이 되던 해, 국제전화 요금이 많이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작은 녀석이 쓴 전화였다. 알고 봤더니 5학년 9월에, 미국에서 살고 있는 여자아이가 보은에 있는 엄마한테 왔었고, 잠시 머물면서 내 아이와 한반에서 공부를 하다가 방학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어느 날 한밤중에 여자애한테 우리 애를 찾는 전화가 왔었는데 누구니? 하고 물으니 친구예요. 하던 일이 생각났고, 그 전화가 미국에서 걸려온 것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다. 그 해 겨울에 그 아이는 한국에 왔고 청주에 머물러 있었다. 내 아이는 서로 전화 연락을 했고, 청주에 가서 그 아이와 만나 함께 쇼핑을 하면서 옷도 사고 영화관에도 가고 PC방까지 빽빽한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기도 했다. 중1까지 국제전화를 주고받는 것 같더니 그 뒤에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엄마의 입장에서 내 아이를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어떤 때는 전혀 다른 면을 볼 수도 있다. 어찌 어른의 잣대로 아이의 세심한 마음까지 다 헤아릴 수 있을까? 내 아이가 이성에 눈을 뜨며 관심을 가졌던 동심을 지켜보면서 걱정과 우려보다는 내게 많은 웃음과 재미를 느끼게 해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송원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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