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담상
상태바
목요담상
  • 송원자 편집위원
  • 승인 2009.07.30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부가 뭔지?
우린 저마다 타고난 기질로 인해 어떤 부분은 자신감이 있고, 어떤 부분은 정말 못해서 지독한 열등감을 갖는다. 그리고 이미 지난 시간 속에서도 현재까지 따라 다니는 열등감이 있는데, 자율이 아닌 강제성을 띤 학창시절의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몇 년 전, 중학교 동창 모임에서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더욱 느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 친구는 여고 동창생 8명과 선운산으로 단풍놀이를 갔었다. 선운사 입구까지 도착하니 점심때가 되어 그 곳의 별미인 풍천장어를 먹으러 갔다. 맛있는 음식과 술은 금상첨화라 그들은 술도 주문하기 위해 메뉴판을 보았다. 그 모임 총무가
“소주 먹을래? 백세주 먹을래?” 하고 의사를 묻자
한 친구 가
“어차피 먹으면 취할 걸 싼 걸로 먹자”
그 말에 내 친구도 역시 맞장구를 치며
“그래 가격도 세배나 되니 소주먹자” 라고 했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두 친구가 합창하다시피 하는 말
“아니, 백세주 값이 두 배지” 하였다고 한다.
내 친구는 순간적으로 당황하였다고 한다.
‘소주의 가격은 2,000원이고 백세주 가격은 6,000인데 그 것이 두 배이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해 온 나의 계산법이 틀렸나?'
‘아니야! 잘 봐! 백세주 값이 소주의 세 배지! 두 배냐’ 이렇게 말하고 싶었어도 메뉴판을 각각 들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혹시 옳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또 하나의 이유는 두 배라고 말했던 두 친구가 학교 다닐 때 자기보다 공부를 더 잘했기 때문에 망신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무 소리도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음식이 나왔는데 입맛이 떨어져 제대로 먹을 수도 없었고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아름다운 풍광도 눈에 들어오지 않아 하루가 불편하고 피곤했단다.
집으로 돌아온 뒤도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아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생각 끝에 사탕을 6개 갖다놓고 2개씩 묶음을 지어 보면서 한 배라는 것은 똑같은 것이 두 개 있어야 되는 것인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고 그렇다면 지금껏 정녕 헛살아 왔던 것이 아닌가? 내가 아무리 수학을 못했다고 해도 12년간 교육을 받았는데...... 하면서 속이 타서 한숨도 내쉬곤 했단다.
또 계산기를 두드려 보았다고 한다. 6,000÷2,000을 해보니 답이 3이 나왔고, 또 검산하는 식으로 3×2,000 도 해보았단다. 그렇게 여러 가지 방법과 생각을 하면서 정말 확신이 서지 않아 남편한테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 보니 자기생각이 맞는다고 하였다.
며칠 머리 아프게 고민을 끝낸 상태에서, 선운사에서 백세주가 소주의 두 배라고 말했던 총무를 만났다고 한다.
“선운사에서 내가 술값을 보니 백세주는 6,000원이고, 소주값은 2,000원인데 백세주 값이 소주의 세 배인데 너 왜 두 배라고 했니?” 하고 물어봤단다. 총무는 그 당시의 일도 생각이 나지 않았고 그 말을 했는지 조차 모른다고 했다. 총무의 그 말에 그 동안 힘들었던 시간이 무너지면서 맥이 빠져버렸다고 한다. 총무도 계산을 순간 착각한 것인데 그 것으로 인해 내 친구는 많은 시간을 힘들게 지낸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내 친구는 덧붙여 들려주었다.
“나 사실 그 날 선운사 식당에서 그 일 있은 뒤, 선운사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오늘까지 나 자신에 대해 얼마나 열등감을 가졌는지 몰라. 그리고 우울증까지 올 정도로 심각했어. 학교 졸업하면 학교 때 '공부 못한 거' 안 따라 다닐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아! 화려했던 옛날이여! 다시 그 날이 온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공부를 열심히 할 건데”
그 친구의 말에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우리의 열등감이 때로는 분명 확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위축될 수 있다는 것과, 평소 목소리도 크고 활달하고 씩씩한 내 친구가 아주 잘 살고 있는데 이미 20여년이 지난 학창시절의 열등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 생각하거나 또는 아무 생각 없이 말 한 것이 상대방에게는 아주 심각한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평범한 아주 평범한 교훈을 되새겨 보았고, 그 열등감의 근원을 줄여주고자 자녀를 가진 부모는 공부하라고 내 아이를 닦달하는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송원자 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