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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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힘
  • 보은신문
  • 승인 2009.05.15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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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원자 편집위원

지난 5월 9일, 영문학자 장영희 서강대교수가 별세하였다. 그 소식에 마음이 무거웠고 가슴이 아팠다. 내가 장 교수를 알게 된 것은 일간지에 연재했던 칼럼을 통해서였고 그 이후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그의 글을 읽고 장애인이 겪어야 하는 불편함과 사회적인 편견을 볼 수 있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었다. 두 아들이 있는 서울 집에서 신문칼럼을 엮은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으며, 혹시 신촌에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했었다. 그만큼 그분을 좋아 했다.

장영희교수는 그가 기억하는 생의 첫 순간부터 중증장애인이었고 남들에겐 쉽다 못해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사는 모든 것들이 하나도 쉽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두 다리와 오른팔이 마비된 그를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등에 업고 학교에 등하교시켰고, 그를 화장실에 데려가기 위해 두 시간에 한 번씩 학교를 들락거렸다.

그리고 눈이 내리는 날에는 학교에 못 데려다 주게 될까봐 새벽에 일어나 연탄재를 부숴서 집 앞 골목길에 뿌려 놓았다고 한다. 몸이 불편한 딸을 업는 것 자체도 어려웠을 텐데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가족을 보살피며 해야 할 가사일 외에 많은 일이 따라다녔을 것이다. 늘 바쁘고 힘든 일이 많았겠지만 그걸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일일이 학교를 찾아 사정을 했지만 번번이 거절을 당했다고 한다.

혼자 힘으로 많은 난관을 겪었으리라는 것은 말을 하지 않아도 상상할 수가 있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모교인 서강대 강단에 서게 되었고, 그는 모든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수업시간에는 더 없이 깐깐하지만 사적으로는 따뜻한 언니처럼 엄마처럼 한없이 따뜻하고 의지가 되는 스승이었다. 고난에 굴복하지 않는 도전정신과 긍정적 삶의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독자들에게 희망을 안겨준 작가이기도 했다. 57세의 일기로 떠난 그는 생의 마지막 8년 동안 3번 암진단을 받았다. 2001년 유방암 진단을 받고 완치됐으나 암이 척추로 전이된 데 이어 간으로 번졌고 지난 2년간 24차례에 걸쳐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집필을 계속했다. 내 년부터 보급될 중학교 영어 교과서와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탈고하고 지난 달 중순까지 병상에서 교정을 봤다고 한다. 장교수는 장애우의 정당한 권익을 찾기 위해서 실천에 나선 행동가였다.

그의 삶은 장애인으로 태어나 암으로 투병하기까지 몸에 통증이 그의 일부처럼 늘 따라다녔던 것 같다. 그렇지만 생명이 스러져 가는 순간까지도 집필을 하며 마지막까지 불꽃을 피운 그녀의 삶은 그 자체가 기적이었던 것 같다. 그 기적의 힘은 어디서 왔을까? ‘될 성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고 했듯이 그녀가 지닌 성품과 의지가 있었기에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부모님의 자녀에 대한 헌신적인 노력과 전폭적인 지지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다. 이렇듯 세상에 태어나 자신을 보호하고 키워주는 부모가 자녀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의 어머니는 그의 일생에 훌륭한 존재였고 어머니의 힘은 그를 지탱하는 것 자체였을 것이다.

그 증거로 그가 마지막 남긴 편지는 어머니에게 썼다고 한다. 타계하기 10여일 전에 통증과 혼미한 상태에서 사흘간에 걸쳐서 썼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 참 좋았어.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였다. 죽음을 준비하면서 그냥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존재를 있게 한 어머니에게 눈물의 편지를 남겼다.

이 내용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거의가 가슴이 뭉클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타계 4일전, 어머니 역시 편찮은 몸으로 장교수 다리를 주물렀는데 의식이 없던 그가 어머니 손길을 느끼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엄마”하고 불렀고 타계직전에 입에서 흘러나온 마지막 말도 엄마였다고 한다. 마지막편지와 마지막으로 부른 것도 ‘엄마’인 만큼 그녀를 있게 한 것은 어머니의 힘 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저 태어나면서부터 불편한 몸으로 또 병으로 마지막까지 고통을 겪으며 떠난 딸이 가여워 더 가슴이 아팠을 것 같다. 그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아이를 임신하면서부터 자신의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낳아서 키우고 교육시키며 크고 작은 일을 겪게 되는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이든 자녀에게 정신적인 재산을 많이 남겨준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역할은 한 사람의 삶과 가치관을 형성하는데 깊은 영향을 주므로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미 고인이 되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살면서 순간순간 떠오를 때가 많다.

난 여자로 태어나 아버지와 어머니의 딸로 살다가 결혼을 하여 남편의 아내로 그리고 내 자녀의 엄마가 된 것이 축복이란 생각이 든다. 내 아이의 엄마로 살면서 때로는 가슴 아파 잠 못 이룬 적도 많지만 아이들이 내게 준 기쁨으로 행복할 때가 많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내 자녀와 함께하는 삶이 행복하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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