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
상태바
고독했던 전직 대통령의 죽음
  • 보은신문
  • 승인 2009.05.15 15: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무현 전(前) 대통령이 서거했다. 향년 63세. 농사나 짓고 손자, 손녀와 살겠다며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 마을로 귀향한지 1년5개월 만이다. 사저 뒷산인 봉화산 부엉이바위에서 40m 깎아지른 듯 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고 한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화장해 달라.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내용 등이 적힌 유서가 서재 컴퓨터에서 발견됐다.

성질을 참지 못한 충동자살을 제외하고 불안감을 안고서 자살을 선택하는 전제된 상황은 극도의 절망감과 외로움일 것이다. 자신을 이해하고 지켜줄 수 있는 버팀목이 주변에 없을 때 우리는 엄습해오는 고독과 좌절감을 경험하곤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집어 던졌던 5공 청문회 스타 노무현. 당시 국민의 눈에 침착하고 차분하게 논리적으로 질문하며 추궁하던 고인의 모습은 요즘말로 ‘짱’이었다.

그러나 겉과는 달리 고인은 한국의 정치사회풍토에서는 늘 외롭고 고독한 정치인이었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던 고인은 부산상고를 나와 불굴의 의지로 인권변호사가 되었다. 이후 국회의원, 해양수산부 장관을 거쳐,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을 지냈다.

고인의 이력에서 보듯 지연, 학연 등 연고주의가 만연한 한국사회풍토에서 학연이 없었던 고인은 늘 이방인이었다. 법조계, 정, 관계 등 모든 분야에서 이른바 ‘교우회’ 혜택을 볼 수가 없었다. ‘비주류 정치인’, ‘비주류 법조인‘으로서 모든 문제를 홀로 해결해 나가야만 했다.

뿐만 아니다. 3당 통합 당시 동향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노선을 반대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했으니 부산 경남지역에서도 외로운 정치인이었다. 지역주의에 맞섰으나 고독했다.

고인이 대통령으로 재임했던 5년 동안 ‘권위주의 무너뜨리기 ’‘돈 없는 선거‘를 만든 정치개혁은 업적이 됐다. 그러나 스스로 낮춰진 비주류 대통령의 권위는 재임기간 내내 수구언론을 비롯한 주류집단의 무시와 도발을 감내해야만 했다.

이렇듯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지닌 고인의 성정으로서도 최근 검찰수사는 견디기 힘들었나 보다. 아마도 그와 가까운 친구, 지인, 가족들의 검찰 구속 수사에는 인간적인 고뇌가 너무도 심했을 것이다.

고인은 생전 마지막 검찰 출두에 앞서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고 했다.

이것으로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할 그 어떤 이유조차 찾을 수 없었던 스스로에게 내린 정신적·정치적 사망선고였다고 추정하고 싶다.

어쨌든 고귀한 한 생명이 이 사회를 버리고 떠나갔다. 우리는 한 나라를 이끌었던 지도자의 충격적인 죽음 앞에서 많은 것을 돌아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최동철 편집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