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준(보은 누청, 대전 중구청)
K형!은행잎이 노랗게 신열을 앓다 떨어지던 날이 며칠 전인가 싶더니 어제는 한밤 내 폭설이 내렸습니다. 마치, 그리움이 차곡차곡 쌓이듯 천지가 백색의 아름다움으로 쌓이고 말았군요. 첫눈치고는 꽤 많은 눈이 내려서인지 유년의 기억들이 자꾸 떠올라 퇴근길에 길모퉁이 어묵 집에 들러 정종 한 잔을 청했습니다. 창 밖에는 계속 함박눈이 날리고 연거푸 잔을 들었습니다. 아마, 지금쯤 북실 땅 재 넘어에도 많은 눈이 내리겠지요?
K형!
우리가 함박눈을 맞으며 뛰놀던 그곳에 '동학공원'이 들어선다지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 고향은 동학(東學)의 넋이 묻혀 있는 유서 깊은 땅입니다. 동학운동이 어떤 운동입니까?. 부패한 관리들과 토호들의 탐욕 및 불법행위에 농민들이 분연히 일어나 항쟁한 한국 민중운동사의 빼놓을 수 없는 혁명이 아니겠습니까?. 동학혁명이 있었기에, 그 정신이 살아있었기에 3.1만세운동과 4.19의거, 5.18민주화운동이 타올랐고 결국 6.10 시민항쟁의 승리를 가져오게 되었지요.
K형!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1894년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북실 땅에서 수천, 수만의 혁명군들이 '척양척왜'를 부르짖다가 관군과 왜군의 칼날에 처절하게 목숨을 날리면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그들의 정신을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한국 민중운동의 횃불을 드높였던 자랑스런 땅에서 살고있는 그들의 후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K형!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히 요즘 들어 우리 고향에서도 동학을 재조명하고, 유적지를 찾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공주의 우금치나 정읍의 황토현은 지표 위에 남아있는 흔적이 거의 없지만 우리 보은은 장내리에 동학군들이 쌓아올린 돌 성이 남아있고, 최후의 전투를 벌인 북실에는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가옥의 터가 있습니다. 이처럼 학술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높은 가치를 지닌 '보은 동학'의 유적이 하루빨리 사적지 및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합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보은 동학혁명에 대한 자부심을 끌어 올려야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관계 기관과 주민의 인식전환도 있어야겠지요.
K형!
아까부터 내리던 함박눈은 아직도 그칠 줄 모르고 있습니다. 취기가 온 몸으로 퍼져서 그런지 눈송이 하나 하나에 마치 동학혁명의 목숨이 달려서 산천을 휘날리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살아온다면 옷깃을 여미고 저 들판으로 나가 우레 치며 반갑게 손을 내밀어보고 싶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정이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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