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기운을 받은 나무에는 물이 차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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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기운을 받은 나무에는 물이 차오르고
  • 송진선 기자
  • 승인 2009.03.13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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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대산 거쳐 금적산까지

다시 내려올 거 왜 힘들여서 올라가느냐고 물으면 산이 거기 있어 산에 오른다고 한다. 정말 무심한 답이다. 그런데 정말 사람들은 왜 산에 오르는 걸까. 아직까지 철학이 담긴 답을 찾지 못했으며 그 해답을 찾기라도 할 것인 양 지난 8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심하게 산에 오른다. 우리 동네 명산 탐방. 두 번째 산행지인 덕대산∼금적산까지 도상 거리 10㎞를 걸었다. 이번 산행에는 전달의 삼승산, 울미산 산행 때보다 5명이 더 늘어난 12명이 함께 올랐다. 오전 9시30분경 덕대산에서 부터 산을 오르고 금적산 서원1리(농공단지 입구) 방향으로 하산, 총 6시간 걸렸다. 중간 중간에 전망을 감상하고 놀기도 하는 등 평소보다 더 쉬엄쉬엄 산행을 했기 때문이지, 정상대로 산행을 했다면 4시간 30분, 5시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

#속리산, 구병산, 금적산까지 한눈에
수한면 거현리 문티재 정상에서 출발한 덕대산 산행은 생각보다 코스가 어렵지 않았다. 옥천군과의 경계인데다 이름난 산이어서인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닿은 흔적으로 인해 자연스런 등산로가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현상이 발견됐다. 일부러 조림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능선을 중심으로 옥천 쪽으로는 소나무림이고 보은 거현 쪽으로는 참나무 등 활엽수림이 있다는 것. 방향으로 보면 동북향과 서남향인 것 같은데 동남향인 보은 쪽에는 활엽수림이 서남향인 옥천군 쪽으로는 침엽수림이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

새벽3시까지 잠을 못잤다, 전날(토요일) 민주지산을 등산했다, 속리산 천왕봉을 다녀왔다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오르다보니 벌써 정상이다.

아니 아직 정상에 닿은 것이 아닌데 조망하기 좋은 곳이어서인지 초라하게 전망대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아마도 정상보다 전망을 감상하기 좋기 때문에 먼저 산을 오른 사람이 그렇게 한 것이다.

역시 보은군 쪽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아버지인 속리산, 어머니인 구병산, 아들인 금적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산과 산 사이에는 뿌연 안개 같은 것으로 운해를 보는 느낌이었다. 우리지역의 사진 명소를 찾기가 어려운데 속리산을 박차고 떠오르는 일출촬영지로서는 제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고장에서 이렇게 좋은 명소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사이 옥천군에서 먼저 덕대산을 옥천군화 시키고 있었다. 옥천군 마크가 새겨진 덕대산 등산안내도 및 산행 표지판 등을 설치한 것.

어쨌든 전망대를 거쳐 575m 덕대산 정상을 향했다. 정상은 그야말로 덕대산 표지석만 서있고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덕대산 정상은 산성 터라고 한다. 신라 땅이었던 삼년산성의 전초기지 구실을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경 조망할 수 있게 주변정리 필요
덕대산 정상도 보은 쪽의 잡목을 제거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면 전망대처럼 조망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덕대산 전망대를 옥천군이 차지했으니 덕대산 정상은 보은군에서 차지해 정상의 주변을 정리해 포토아일랜드를 만들고 또 등산 안내도와 함께 속리산, 구병산, 금적산까지 덕대산 정상에서 감상할 수 있는 주변 조망도를 설치하면 등산인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전망은 이곳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정상 부근 아래에 처사 김령 김공의 묘라는 묘지를 발견했는데 오히려 덕대산 정상보다 전망이 아주 좋았다. 풍수에 일자무식인 사람이 보아도 그냥 명당자린 것 같았다. 이곳에서도 전망을 감상하며 보은 풍경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졌다.

하산길을 재촉하다 덕대산과 금적산의 경계인 것 같은 고개길을 만났다. 지도에는 옛 고개길(거리고개)이라 표기돼 있고 성황당이었을 것 같은 돌무더기도 있었다.

거현1리와 옥천군 안내면 동대리 쓰리를 연결하는 고개인데 현 25번 국도가 통과하는 동진휴게소가 있는 문티재 정상(320m)보다 최대 100m 정도는 낮아 보였다. 거현2리 어예선 이장에 따르면 “옛날에는 걸어서 옥천과 대전을 가는 매우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골이 깊고 경사도가 있어 일제시대 신작로를 현재의 국도 25호선 방향으로 내면서 옛고개 길(거리고개)은 자연스럽게 폐쇄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적산 아래 부자가 많다
금이 쌓여 있어 금적산(金積山)이라고 했다는 그 산이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인다.
해발 652m인 금적산은 보은군 삼승면과 수한면, 그리고 옥천군 안내면과 경계를 이룬다. 금적산 정상을 향하다 만난 한 아주머니는 “80노구의 아버지를 모시고 금적산을 등산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정상은 너무 밋밋하고 등산로도 맛이 없다”고 아쉬워하면서 금적산에 얽힌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부부의 전설을 얘기해줬다.

얘기인 즉은 ‘금송아지와 금비둘기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금송아지가 어느 여름 밭을 갈다가 넘어져 두 눈을 잃어 버렸고 금비둘기가 남편 금송아지를 먹여살리게 됐다고 한다. 열심히 봉양했으나 금비둘기가 모은 음식으로는 금송아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남편 섬기기가 고통스러워지자 금비둘기는 남편 금송아지에게 이별을 통보하고 날아가 버렸다. 앞을 보지 못하는 금송아지는 아내 금비둘기를 찾아 헤매다 금송아지는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꼬리는 남쪽인 옥천군 안내면 오덕리 쪽으로 두고 죽었다. 그래서 오덕리에는 사금이 많이 나고 삼승면 선곡리에는 부자가 많이 난다고 전해오고 있다.’는 것.

우리 일행은 보은군민이 아닌 것처럼 “참 슬픈 얘기네요” 하고 맞장구를 쳤지만 보은군민으로서 창피함마저 들었다.

정상까지 내달려 확인해본 결과 그 아주머니 얘기가 맞았다. 삼승면 기관단체장이 설치한 652m라는 표지석만 있을 뿐 방송국에서 설치한 TV 중계송신탑 2개와 보은군에서 산불감시 자동시스템 시설물을 설치해 정상의 경관이 온통 시설물로 덮였다. 문명의 이기들인데 산에 있으니 애물단지로 보였다. 오히려 정상에서 보이는 속리산, 구병산과 함께 삼승산, 울미산에 대한 소개와 함께 금적산에 얽힌 전설을 소개한다면 금적산을 등산하는 외지인들에게 금적산에 대한 보다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보은의 대표적 곡창지대인 탄부들과 삼승들이 한 눈에 들어오는 전경은 가슴이 탁트일 정도로 장쾌했다.

금적산에서 하산하는 길은 원남3리 상원남 방향과 서원2리, 서원1리 방향 세갈래가 있다. 어느 곳으로 하산하든 우리고장의 대표적인 농산물인 맛있는 삼승 황토사과를 구입할 수 있다.

또 금적산 기슭인 선곡1리쪽으로 하산하면 비지정 문화재이지만 1815년에 창건한 금화서원도 감상할 수 있다. 이곳에는 최운선생과 대곡 성운선생, 남명 조식 선생, 동주 성제원 선생, 계당 최홍림 선생 까지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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