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보름달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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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보름달을 선물합니다>
  • 보은신문
  • 승인 2009.02.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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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귀선 시인
억만년을 비춰주고도 빛이 바래지 않는 달
달은 그리운 이의 마음이고 얼굴입니다
달은 바라볼수록 바라보게 되고 그리움은 그리워할수록 그리워집니다
달은 홀로 있어도 밝지만은 나는 홀로 있으면 어둡습니다
암만 바라보아도 지치거나 실증나지 않는 달
달 보고 그리는 정은 애달프기도 하지만 그리다 지치는 밤은 길기도 합니다

초승달은
시작과 희망의 달이요
예쁘고 깜찍한 소녀같은 달이며
저녁먹고 서산에 슬쩍 나타났다 금방 사라지는
어느창가에 끌어다 놓고 싶은 달입니다

조각달은
벗어던진 속 옷 실패한 여인의 편지조각 버림받은 나그네랴
견우직녀 만나 놀다 어렴풋 빛과 어둠을 반죽하여 은하강 건너로 던져버린 달이랴
이지러진 얼굴 부끄러워 그림자 뒤에 그림자처럼 숨어가는 달이랴
버리고 가신님 못잊어 먼 곳으로 떠나고 먼 곳에서 오는 비운의 어느 누님같은 달이랴

애수의 반달은
구름속을 들고나다 반쪽을 잃어버린 달인가
햇님이 뭉텅 잘라먹고 뱉어 놓은 달인가
제 짝 그리며 때를 기다리는 처녀총각의 달이기도 하고
꿈의 왕자를 연모하며 밤하늘을 거니는 묘령의 공주 같은 달이요
밤도와 얘기를 나누며 동행 해 주고 싶은 달이기도 합니다

초여드레 상현달은
잉태한 새아씨 커지는 배 만삭의 옥동자를 빌며 배앓이 함이랴
희망의 돛을 달고 밤바다를 노젓는 조각배라 하랴
깊어가는 가을밤 오동나무 가지에서 곡예를 하다 자정넘어 가버리는 달이랴

달중에 달 보름달은
그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 달입니다
천하를 정복한 우주의 영웅이 삼라만상을 품고 덩실덩실 춤을추며 자축하는 듯 환희의 달
희망과 절망 웃음과 눈물 행운과 액운 만남과 이별 선과 악 인류의 모든것을 다 쓸어안고
더 이상 둥굴수도 밝을수도 채울수도 없이 만족과 완성에 빛나는 성공의 달입니다
63억 지구인의 소망과 그리움을 몰고 다니는 신비의 달이기도 하고
천국의 저수지에서 밤새도록 목욕을 하고 돌아가는 신령스러운 하늘의 여왕과도 같고
만고풍상 다 이겨낸 내 어머니 아버지와도 같은 달입니다

스무사흘 하현달은
부귀영화 누렸던 제 몸 조금씩 조금씩 깎아 내며 옛 추억에 잠겨보는 달
눈내린 창가에서 바라보면 그리운 사람의 얼굴을 띄웠다 지웠다 합니다

그믐달은
한달의 일을 마치고 돌아서는 달
요염한 계집이 한과 비수를 지닌 듯 함부로 다가설 수도 바라볼 수도 없이
비장함이 번뜩이는 서슬 퍼런 칼날의 달이기도 하고
미쳐 잠이 깨지 않은 새벽 정한수로 깨끗이 씻은 실눈 가늘게 뜨고
제 소원 빌다 동녘이 밝아오면 황급이 사라지는 전설의 여인같은 달입니다

텅빈 하늘에 달이 없으면 얼마나 삭막하랴
암흑의 밤을 인간은 어이 할 것이며 또 나는 무엇을 보고 그리워하리

달 달 달은
가신님은 물론 친구도 고향도 옛날도 잊었던 얼굴까지도 그립게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에게 보름달을 선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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