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관광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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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관광을 다녀와서
  • 보은신문
  • 승인 2008.12.0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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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선(보은읍 삼산리/엘리트학원장)

▲ 황경선
◆급랭하는 남북관계
11월 12일, 북한은 ‘다음달 1일부터 군사분계선을 통한 육로통행을 엄격히 제한·차단하겠다’는 내용의 전통문을 보내왔다. 꼭 열흘 뒤인 11월 22일, 가까스로 개성땅을 밟을 수 있었다.
아마 조금만 늦게 움직였어도 북한땅을 밟아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개성을 다녀온 다음날, 북한은 12월 1일부터 개성관광 중단, 도라산 ∼ 봉동간 철도운행을 중단하겠다는 발표와 동시에 개성공단 경협사무소 폐쇄, 개성공단에 있는 남쪽인사 절반의 축소를 요구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경색될 대로 경색된 남북관계가 좀처럼 풀릴 기미가 안보여 많은 사람들이 속이 타고 답답해 죽을 지경인데, 북한은 대남 압박조처의 수위를 점점 높여가고 있다.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으로
북측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공단을 거쳐 박연폭포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나의 체감시간은 10분도 안 걸린 것처럼 빠르게 느껴졌다. 버스 안에서 북측 안내원의 개성공단 전반에 대한 희망에 찬, 열렬한 설명에 관광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안내원 스스로 자진해서 부른 ‘고향의 봄’, 앵콜 곡으로 부른 ‘아리랑’을 들으며 나는 눈물을 훔쳤다. 나 말고도 아마 눈시울을 적신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북한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도 난 눈물이 난다. 새터민들을 만나면 그들은 모두 가수처럼 신나게 또는 구슬프게 노래를 정말 잘 부르는데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난 항상 눈물이 난다. 분단된 조국에 대한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난다.
북측 안내원의 간절하고 구슬픈 음성이 그 버스에 탄 모든 관광객의 마음을 녹였듯이 얼어붙은 남북관계도 사르르 녹아 남북이 함께 손잡고 남북의 경제위기를 함께 극복해 나갈 수 있다면….
까맣고, 깡마르고 눈만 초롱초롱하던 북측 남자 안내원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우리는 한 핏줄, 한 형제
개성까지 오는 길에 무장한 경비병들이 부동의 자세로 띄엄띄엄 한 명씩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 때문에 저 고생을 하고 있지? 혹시 탈북자들 감시? 무척 궁금했다. 그런데 매일 들어오는 개성 관광버스의 혹시 있을지 모르는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기 위해 서 있는 거라고 했다. 그러나 사람 하나 없는 들판에서, 산중턱에서, 마을 입구에서 달랑 홀로 외로이 서있는 경비병들이 가련해 보였다. ‘때가 되면 얻어먹기는 할까? 뭐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 사고가 생긴다 해도 혼자 뭘 어쩌겠다구.’ 혼자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돌아오는 길에는 그들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개성 관광버스가 들어올 때만 우리를 반겼던(?)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부담스러웠는데 다행이었다.
똑같은 산과 들과 강! 그들도 또한 겨울을 나기 위해 리어카에 소달구지에 배추를 싣고, 시냇가에 배추를 부리고, 마을 우물가에 모여 배추를 절이는 이런저런 겨울김장 풍경 속에서 우리 민족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개성시내 관광
자본주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를 전제로 한다. 대량소비를 하지 않으면 자본주의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환경재앙의 주범은 어쩌면 자본주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개성시내를 보면서 떠올랐다. 그러한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태어나 부족함 없이 50여년을 살아온 내게 개성시내의 모습은 아주 생소하였다. 우리의 도로가 상점 간판들로 뒤덮여 있다면 개성은 상점은 거의 없고 붉은 글씨의 선전 문구들이, 과장하면 곳곳을 도배해 놓고 있었다. 좀 중요한 건물이다 싶으면 영락없이 선전 문구가 쓰여 있었다. 뭔가 효과를 바라며, 주민들을 대상으로 써 놓은 걸 텐데 정말 효과가 있을까? 그걸 보는 주민들은 어떤 마음일까? 참으로 궁금했다. 참으로 신기해 보였다.
도로는 큼직큼직하게 잘 뚫렸는데 오가는 차량이 별로 없었다. 거의가 자전거 아니면 도보, 이따금씩 지나가는 버스(대부분 빈 좌석 없이 승객이 차 있었음)가 대부분이었다. 승용차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우리는 5분 걸어갈 거리도 꼭 차를 끌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인구 4만이 안 되는 보은도 차로 넘치고, 불법주차에 교통사고가 빈발한데 보은 인구의 네 배쯤 되는 개성시내에 차가 이렇게도 없다니! 물론 가난해서일 게다. 원유가 안 들어오는데, 전기불도 제대로 못 켜는데 어떻게 차를? 밥도 제대로 못 먹는데 어떻게 차를? 그러나 가난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만 아니라면 차 없는 거리가 맘에 들었다. 차가 없어서 평소 20분 거리는 걷는 걸 택하는 나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거리 풍경이었다. 차가 없어서 여기 삐쭉 저기 삐쭉 얻어 탈 일도, 기죽을 일도 없으니까.
우리가 5분 거리, 10분 거리도 차를 몰고 다니고 1시간 거리, 2시간 거리도 혼자 차를 몰고 다니며 환경을 파괴하고, 뷔페에 가서 배가 터지도록 먹고 또 먹은 만큼의 양의 남은 음식을 아무런 죄의식 없이 마구 버려 환경을 파괴할 때, 그들은 가난해서 십리 오십리 길도 맨발로 걸어가고, 최소한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옥수수죽도 없어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청주만 가도 ‘삐까뻔쩍’한 건물들이 즐비한데, 개성의 건물은 낡고 볼품없고 거칠었다. 이런 비유가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예쁘게 화장하고,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폼나게 손질하고, 세련되고 비싼 옷을 입은 멋쟁이 도시 아가씨라면, 개성은 생얼에, 그냥 빗만 가린 머리에, 유행이 지난 옷을 입은 그러나 살기 바빠 외모에 신경쓸 여유가 없는 시골 아줌마 같았다. 빚을 내서라도 화장을 하고 유행하는 옷을 입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와는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사뭇 달랐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바빠 손길이 덜 간 탓인지 아니면 시간이 있어도 옷매무새를 만져줄 여유가 없는지 그래도 명색이 ‘개성시’인데 아이들모습이, 우리 농촌 마을에 아이들이 꽤 있었을 적에, 자녀를 많이 낳아 길렀을 적에 부모들이 살기 바빠 어린 자식들에게까지 손길이 다 미치지 못했을 때처럼 꾀죄죄해 보였다. 그러나 밝고 맑은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를 향해 손도 흔들고 웃어도 주는 아이들을 보니 꼬∼옥 안아주고 싶었다.
개성 시내에 있는 선죽교 뒤편 길에서도 소달구지가 김장배추를 실어 나르는 모습이 몇 차례 보였다. 소달구지가 그저 한가롭고 정겨운 풍경으로만 보이진 않았다. 어쩐지 자꾸 안쓰럽고 가슴 아팠다.

◆개성공단, 무너져선 안 된다.
내가 탄 개성관광버스의 남측 안내원 아가씨는 다음날(11월23일)로 실직된다고 말했다. 개성관광 안내원으로서 관광객들을 100% 만족시켜주었던 그 안내원 아가씨의 능력이 정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녀가 그녀의 가정에서 어떤 위치일까 혹시 생활을 책임지는 가장은 아닐까 걱정되었다. 그냥 취미로 하는 일 같지는 않았다. 이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취미로 일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북측 안내원도 재미가 나서 신바람이 나서 우리를 웃겨가며 개성공단을 설명하는 걸 보면서 그도 개성공단을 남북경협·남북화해의 상징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 같았고, 동시에 그에게 있어 개성공단은 자신이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생계수단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이런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북측 근로자가 3만 5천여명, 그들의 가족을 포함하면 적어도 10만명 이상이 될 터이고, 남측 근로자들, 그리고 개성에 입성한 100여개의 우리 중소기업들, 경제가 바닥이라고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인 현실 앞에서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도 개성공단에는 30개 이상의 건물들이 신축공사 중에 있다. 절대로 개성공단이 무너져선 안 된다. 절단나는 것은 북한주민들과 애꿎은 우리 중소기업들이다.

◆6.15공동선언, 10.4선언 더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행의지 밝혀야
꼬일대로 꼬인 남북관계가 풀릴 수 있는 단초는 전 정권에서 남북 최고 정상들간의 합의로 이루어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좀더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행의지를 밝히는 일이다. 10년간 비용도 많이 들고 인내와 양보, 타협을 하면서 공들여 쌓은 남북관계가 지금 하루아침에 무너질 지경에 처해 있다. 11월 24일, 남성욱 국가안보 전략연구소장은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 설명회에서 북이 핵만 폐기하면 10.4선언에서 약속한 사항들을 지킬 용의가 있다고 했다. 핵만 폐기하면!

그러나 지금 당장 100% 핵폐기만 앞세우면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그동안 6자회담을 통해, 미·북한 관계를 통해 핵 문제의 진전은 분명 있지 않는가? 2단계의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지 않는가? 3단계 완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거라는 건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20% 진전 되었다면 그에 맞게, 40% 진전되었다면 그에 맞게 대응을 해줘야 한다.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이행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북이 협의하여 다시 선후를 정하고 조정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들어간 비용보다 훨씬 커다란 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있고, 호전된 남북관계를 이용해 핵폐기로 갈 수 있도록 6자회담, 미·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중심역할을 하고 주도적 위치를 차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한다. 남북문제·한반도문제에 있어서 당사자인 우리가 중심기능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역사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은 남북한의 평화를 위해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세계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핵을 폐기해야 한다.
영영 헤어질 부부가 아니라면 서로의 자존심, 상처, 약점 등을 아프게 건드려서는 안 된다. 다시 화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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