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찰 속리산 법주사와 그 일대를 찾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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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고찰 속리산 법주사와 그 일대를 찾아(5)
  • 보은신문
  • 승인 2008.11.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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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부산외대교수
법주사에는 신라예술의 백미라고 하는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을 빼놓을 수 없다. 이 등(燈)은 두 마리의 사자가 마주보며 앞발을 높이 치켜들고 석등을 받치고 있는 독특한 양식으로 신라의 석등 중 가장 솜씨가 뛰어나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이 석등은 경남 합천의 영암사지 쌍사자석등, 국립광주박물관의 중흥산성 쌍사자석등과 더불어 신라의 3대 쌍사자석등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런 보물을 본다는 것은 행운이며 잊을 수 없는 일이다.

법주사 경내에는 수십 가지 국보와 보물이 있는데 일일이 소개할 수 없다.
노인들은 2시가 넘도록 시간가는 줄 모르게 구경한다. 3시가 다되어서 법주사를 나와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한분도 빠짐없이 제시간에 탑승하니, 회장과 총무와 부회장이 기뻐한 모습이 인상 깊다.

박 기자는 천연기념물 정이품송의 부인되는 소나무가 있다고 하니 노인들은 처음 듣는 소리라고 한다.
장안면 서원리에 있다고 하면서 한참 가니, 그 있는 곳을 가리켜 준다. 바라보니, 열두 폭 치마를 두른 듯 줄기가 2개로 갈라졌기 때문에 암소나무라 불린다고 하는데 수령 600년 정도로 추측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들은 두 소나무가 떨어져 있어 합궁하기가 쉽지가 않으니, 견우·직녀와 같이 1년에 한 번 만나 후계목이나 키우면 된다고 하니, 할머니 한 분이 좋은 일이라고 한다. 할아버지 한분이 좋은 것은 정부인송이라고 하니, 또 한 할머니가 “둘이 다 좋지요”라고 말하니, 또한 다른 할아버지가 “어떻게 좋습니까”라고 물으니, 할머니가 “영감도 부인과 살아봐서 알 것이 아니냐”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어느 사이에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는 사이에 장안면 개안리 명당자리에 1919-1921년 사이에 지은 선병국(宣炳國)의 99칸 가옥에 당도했다.

박 기자가 노인들에게 구경할 것을 권하니, 3채로 나눠져 있는 집을 보려고 나선다. 빈터에 놓여진 장독을 모두 합하면 천여 개 이상이 될 것 같이 보여 놀라는 모습들이다.

우리가 자랄 때 집에는 보통 크고 작은 장독이 20개 정도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집에는 99칸에서 살게 되니, 많은 손님들이 내왕하여 큰 장독에는 고추장 된장 간장을 담갔을 것이다.

집터에는 40-50년생으로 보이는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셀 수 없을 정도로 달려 있어 좋은 터에 자리 잡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나무에 이렇게 감이 많이 달린 것을 처음 보았다. 사람은 경제적으로 부하게 살면 좋은 터에서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4시 반경이 지나 박 기자는 보은군 산외면 신대2리로 가서 보은황토사과 과수원에 들른다고 한다. 그곳에 가면 황토에서 생산된 사과를 잡수실 것이라고 하니 과수원을 향할 때 마음이 설렌다.

과수원에 당도해 황토에서 열린 사과를 맛보니, 반할 정도로 입맛을 사로잡는다. 보은에 황토사과는 황토가 지닌 풍부한 미네랄로 인해 맛과 향이 뛰어나고 밤낮의 기온차가 심해 당도가 높고, 비타민 C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황토사과는 고운 살결을 유지시켜주고 변비에도 좋다는 것으로 알려져, 노인들은 황토사과를 시식하고 난 후 자연미가 조화미를 이룬 독특한 맛이 난다고 인기상품이 되어 사려는 노인들이 많아졌다.

노인들은 사과 50개 3만원이면 반값이라고 여러 상자를 샀고, 명함을 달래 보니, '신개울농장'으로 되어 있다. 주인은 사과를 노인 한분마다 여러 개 선물하니 고맙기는 하나 애써 가꾼 사과이고 인건비 등을 계산하면 별로 남는 것이 거의 없는 것을 잘 아는 노인들이라 부담이 간다고 말한다.

사과밭은 넓고 사과나무마다 몇 백 개씩 열린 나무가 많지만 과수원을 한 경험이 있는 노인의 말에 의하면 적자운영아라고 말해 준다. 과수원 주인과 부인을 보니, 순박하게 생겨 법이 없어도 살아갈 것 같은 인상을 풍겨 예로부터 충청도 양반이란 말이 있듯 그 내외가 보은군의 민심을 나타내 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노인들은 과수원 주인 내외의 친절미·인정미·순박미에 끌려 마음에 든다며 사과를 더 많이 샀다.

다음은 오늘 일정의 마지막 목적지인 서예각(書藝閣)을 가게 되는데, 5시가 가까워졌다. 이 각은 동정초등학교가 폐교되어 그 자리에 벽마다 역대명필가의 서예를 오석(烏石)으로 만든 돌에 새겨 벽에 붙여 놓았는데 한문체만 아니라 한글 서예도 볼 수 있게 하였다. 넓은 담에 역대 문필가의 명필을 볼 수 있게 새겨놓아, 서향미(書香美)를 풍겨준다.  예전에는 문을 숭상하던 숭문주의(崇文主義) 시대였으니, 현대인들이 따르기 어려운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게 된다.

원래 보은군의 인구는 12만이었으나 도시화로 현재 3만 5천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서예각 오른 쪽 문을 들어서니 고려시대 삼국사기를 편술한 김부식의 초서가 눈에 뜨인다. 노인들 중에는 건영캐스빌 단지 내 경로당에서 운영하는 서예를 하는 이들이 여러분 있어 관심 있게 보나 워낙 수가 많아 자세히 볼 수가 없다.

내 소견으로는 한문과 초서로 되어 있는 한문체와 한문은 쓴 분의 경력과 한문원문과 해석을 붙여 놓으면 일반인들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자를 만들어 판매하면 될 것이라는 것과 서예를 하는 이들은 10월 중순경에 서예전이 이 곳에서 열린다고 하니, 참가하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간은 흘러 5시 반경에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이곳을 떠났다. 차안에서 노인들이 노래자랑의 경연이 시작되어 이위도 여사를 위시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부르며 시간가는 줄 모르니, 8시경에 건영캐스빌 단지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관광은 날씨도 좋았고 무사히 도착하여 모두들 기뻐한다.

노인회원들은 법주사와 그 일대를 따라 다녔지만, 회장 총무 부회장은 힘써 회원들을 일일이 보살폈으니, 수고가 많았고 좋은 곳을 다녀와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백승재님은 노인들과 담소로서 분위기 조성의 힘썼고, 박상범 기자 또한 보은일대 고장을 노인들과 본 글을 작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어 감사함을 지면을 통해서 알린다.

이글을 세 부문으로 나누었다. 준비 과정과 법주사에 닿기까지, 법주사내에서의 고찰 소개, 돌아올 때 보은군의 자연경관과 가옥 과수원 서예각을 돌아보고 돌아오는 과정이다. 이 세 가지 내용으로. 보은군에 천년고찰의 역사미와 향토미를 담았는데, 부족한 점이 많아 독자들에게 소개되어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구나 보은신문에 게재하기 위해 일주일 이내에 쓰게 되니, 법주사에 창건유래에 대해서도 밝히지 못하고, 대략 법주사 내에 국보와 보물에 몇 사찰과 그 일대 자연의 풍광미를 주마간산 식으로 소개한데 불과하여 독자 여러분의 많은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끝.

☞ 저자 윤경수씨가 보은출신은 아니지만 보은에 대한 인상이 깊다며 방문기를 보내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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